"「프라하의 봄」은 이렇게 짓밟혔다"|전「체코」국민회의 의장「스므르코프스키」회고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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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주섭일 특파원】7년 전인 1968년 8월「체코」에서 일어난 자유화의 물결은 소련을 비롯한「바르샤바」조약군의 침공으로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이러한『「프라하」의 봄』이 짓밟힌 비극의 전모가 당시「체코」국민회의 의장이었던「요셉·스므르크프스키」의 회고록이 최근「이탈리아」의 주간지「조르니비에·누오베」에『미완성 회고록』이란 제목으로 연재됨으로써 밝혀지고 있다. 「두브체크」와 함께「체코」자유화의 기수였던「스므르코프스키」의 이 회고록은 74년 1월「체코」에서 죽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며 생전에 구술을 받아 놓았던 것. 「프랑스」의「르·몽드」지는 이를 발췌, 이틀에 걸쳐 연재했고, 서독의「슈피겔」지도 이를 싣고 있다.
『8월 20일, 당 간부회의는 하오 2시부터 제14회 전당대회를 위한 논의를 계속 중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관저에서 온 전화를 받은「체르니크」(당시 수상)가 토의를 중지시키고「루마니아」를 제외한「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이 국경을 넘었으며 상오 6시까지「체코」가 점령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반론을 뿌리치고 결국 7대4의 표결로 성명 문을 결정, 원고를 방송과 신문에 넘겼다. 「라디오」는『당 간부회의의 성명을 읽겠습니다』라는 말만 하고는 간부들의 방해로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지방 방송은 이 성명을 낭독, 이로써 전 세계는「체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알게 되었다. 같은 시간 당 기관지도 성명을 인쇄하려 했으나 간부들의 방해로 윤전기가 돌지 못했다고 한다.
동지들이「스므르코프스키」에게 숨으라고 권했으나 그도, 「두브체크」도 이를 거절했다. 『상오 5시, 「탱크」몇 대가 접근했고 낙하산 부대가 중앙「빌딩」을 점령, 총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체코」국기를 든 청년들은 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은 학생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 후 이들은 한 사람씩「모스크바」로 끌려갔다. 여기서「스므르코프스키」는『양심과 인민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그에 알맞은 공산주의 정책을 수행하겠다』고 말해 소련 측을 격노시켰다.
결국 소련 측은 이들에게 소련-「체코」의정서에 강제로 서명을 시켰다.「스므르크프스키」는 이 회고록에서『당시 누가 가장 반대했고, 누가 가장 조인하고 싶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들은 어떻든 반대였다. 우리들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아니면 변절을 했는지 언젠가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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