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금과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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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들의 대학 입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의 자살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좀처럼 들어가기 힘든 대학에 무난히 합격하고, 20만원이란 거액도 아니오, 그 3분의1인 6만 몇 천 원의 돈을 마련하지 못해 소망하던 대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본인과 그 어머니의 안타까운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입시「시즌」이 되면 해마다 이런 딱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혹은 절망직전의 딱한 사정이 보도되고 뜻 있는 분들의 갸륵한 온정이 답지하여「해피·엔딩」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지만 이번 경우 6만 몇 천 원 때문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고교 우등생이던 본인의 절통한 가슴은 어떻게도 치유할 길이 없을 것이다.
대학 입학 예비고사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낙방하여 한강 인도교 같은데서 강물에 투신자살한 대학 지망생들의 슬픈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입학시험에 합격한 미등록 생들의 딱한 사정과 슬픈 소식이 꼬리를 잇는다.
제 두뇌의 한계는 생각지 않고 나도 대학에 꼭 들어가야겠다는 허욕이 무리를 낳는다. 예비고사조차도 붙지 못해 연거푸 낙방하고 자살해야만 했던 사람에게도 동점이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절망하기 전에 자기의 갈 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을 것이다.
어려운 경쟁의 문을 어렵지 않게 통과하고 나서 등록금 때문에 마지막 영광의 문을 들어서지 못하는 수재들의 사정은 잠으로 안타깝다. 이러한 사정도『돈도 없으면서 무슨 대학 공부는…』하고 이것 역시 능력의 한계로 묵살해 버리고 더 머리에 남겨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사정만은 도외시하기 어렵다.
어쨌든 대학의 문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국의 모든 고교 졸업생들이 일단은 대개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재능의 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능력을 돌보지 않고 또한 근래에는 남녀의 구별 없이 모두가 대학진학을 열망한다.
이 일정한「코스」를 가야만 자기의 인생이 열리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자나 열등생이 되는 것으로 자처하게끔 되었다.
과 문한 탓으로 남의 나라사정을 잘은 모르지만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인생의 중반기, 즉 30대 후반쯤에 가면 어느「코스」를 택했건 간에 자기가 택한 「코스」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면 거의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게끔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생활도 평준화되기 때문에 직업의 귀천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듣고 있다.
입시지옥이란 끔쩍한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중학의 평준화·고교의 평준화가 단계적으로 실시되어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 가면 대학의 평준화도 어렵지 않게 실시되어 이 나라가 입시경쟁이 없는 각급 학교 학생들의 낙원이 될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게 편하게는 될 것 같지 않다.
모든 고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야만 자기 앞길이 열릴 것이라는 사고방식과 그러한 획일적인 가치관과 목표를 설정하는 한 대학입시「시즌」에 자살의 소식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만을 마치고도 자기 갈 길을 기쁘게 택하고 고교를 졸업한 사람이 열등감이 아니라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능력과 적성에 맞는 대학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 가는 그런 여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입시지옥은 해소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질이 우수한 수재들은 6만 몇 천 원의 입학등록금 때문에 어머니를 잃어야 하는 절통한 아픔 대신에 대학원·박사「코스」까지 학비로 인해 머리 쓰는 일이 없이 오직 그 우수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국가 민족의 발전과 세계 문학에 새로운 기여를 하는 기쁨과 보람 속에 살게 하도록 하는 뒷받침이 제도화되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정한모<서울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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