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T-오일 산업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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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3월 20일 지루하게 끌던 외교전이 끝나고 이라크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이라크전은 군사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전에 이은 대테러전의 연장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정보기술(IT)산업과 오일산업 간의 힘 겨루기라 하겠다. 1990년대 IT산업을 주도한 미국 경제는 초호황기를 구가하였다.

이에 반해 지식기반의 부재로 오일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던 중동 산유국은 점차 위축돼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급기야 9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의 외환위기로 수요가 급감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3달러까지 폭락하자 중동경제도 함께 몰락하였다.

*** 이라크戰 단기에 끝난다면

한때 우리는 이러한 추세가 지속돼 21세기 들어서도 상당기간 IT산업 주도로 세계 경제가 호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환상에 빠졌었다.

그러나 세계사는 우리에게 항상 일방적일 수 없고 부침을 거듭하며 진행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다름아니라 2000년 들어 중동 산유국의 대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생존을 위해 그동안 제대로 지키지 않던 감산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여 국제유가를 배럴당 34달러까지 상승시켰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들의 이러한 자구책이 미국의 금리인상을 유도하여 주가 폭락을 초래하였고 나아가 IT산업에 잔뜩 끼인 버블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후 IT산업을 대표하는 미국과 산유국을 대표하는 중동국가 간의 갈등 정도에 따라 세계 경제도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이라크전은 중.장기적으로 에너지의 안정공급을 통해 세계 IT산업이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전에 대해 살펴보자. 최근 유수 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해 보면, 이라크전은 극단적인 군사력 격차로 길어야 6주에 걸친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초반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달러화는 강세로 반전되고 주요 선진국의 주가는 상승하는 등 국제금융 시장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올해 중 반전의 계기는 맞게 되겠지만, IT수요 부진의 지속으로 크게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이미 침체국면에 들어선 한국 경제도 큰 악재 하나가 해소돼 최악의 국면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 등 아직 대내외 악재가 중첩돼 있어 급격한 회복은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올해 중 한국 경제가 당초 목표수준인 5%선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금융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 들어 유류수입 증가로 적자로 돌아선 무역수지는 개전 초기 전쟁으로 인한 수출 차질로 다소 악화될 것이나 유가안정과 투자부진으로 다시 소폭이나마 흑자로 반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재 불안한 외환시장은 국제투자자들의 싸늘한 대한(對韓) 시각이 조기에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불안한 양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국내 금융시장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카드빚 문제 등 경색 국면에서 단시일 내에 탈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대외신뢰에 달린 한국경제

그러나 이라크전이 장기전으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사용으로 확대되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상 상승하면서 세계 경제는 정체수준으로 추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같은 석유 수입국들은 큰 폭의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올해 중 정부는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하여 경제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리더십을 강화하여 경제불안 심리를 해소하고 과감하게 금융부실을 정리하여 우리 경제의 대외신뢰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21세기 IT산업 부활의 최대 수혜국으로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丁文建 (삼성경제硏 전무.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