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플레」의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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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1월말 현재 도매물가 상승률은 이미 37%로 6·25동란 후 가장 높았던 64년의 34%수준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여기에 12월 들어 단행된 환율인상과 「에너지」 및 철도운임 인상의 파급효과까지 계산하면 연말 물가상승률은 50% 선에 육박하리란 전망이다.
물가 상승을 선도해 온 석유류 가격은 올 들어 「벙커」C유의 232% 인상을 비롯 평균 192·4%가 올랐다.
정부는 전후 14차례에 걸쳐 1백38개 상품 및 「서비스」요금의 인상조정을 실시해야 했다.
이러한 올해 국내물가가 폭등한 것은 자원파동으로 국제원자재 특히 원유가격이 대폭 오른데다 우리 경제구조가 이 같은 해외「인플레」를 그대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73년 중에 발생된 상승요인을 금년으로 전가함으로써 올해 물가상승폭을 더욱 크게 한 점도 지적될 수 있다.
물가상승의 요인이 된 국제상품가격 동향을 「로이터」지수를 통해 살펴보면 72년 말까지 720(31년=100) 수준에 머물러 있던 것이 73년 말에는 2배에 가까운 1,378로 뛰었으며 금년 2월26일에는 1,497·7로 「피크」를 이루었다. 우리 경제의 수입의존도는 38·2%에 달하며 특히 1차「에너지」원의 경우 52·3%를 해외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해외원자재 가격상승은 바로 우리 국내상품의 「코스트·푸쉬」요인으로 파급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73년 초 고철·면사 등을 중심으로 국제「인플레」가 국내에 파급되기 시작했을 때 정부의 방침은 3%억제선을 고수, 원가상승부담을 기업에 전가시킨 채 행정적으로 물가를 누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 10월 세계를 휩쓴 석유파동으로 해외요인에 의한 물가상승압력이 집중적으로 가중되자 정부는 가격인상의 불가피성을 뒤늦게 시인, 단계적인 인상조치를 실시하게 됐다.
작년 12월4일 석유·배합사료 등 9개 품목의 가격인상을 시점으로 잇달아 실시된 가격현실화 조치는 이 같은 사정을 말해준 것이었다.
연초 정부의 물가에 대한 기본자세는 가격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불가피한 「코스트·푸쉬」만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자세에서 출발한 물가정책의 방향은 우선 물가관계법령을 최대한 활용, 최고가·기준가로 국민생활에 영향이 큰 생필품가격을 통제하는 한편 총수요억제에 역점을 두어 유동성 증가를 막는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반기 두 차례에 걸친 원유가 인상과 2월 들어 최고조에 달한 국제「인플레」 등 해외여건의 악화는 계속적인 물가현실화조치를 불가피하게 만들어 4월까지 10차례에 걸쳐 물가조정이 이루어졌다.
이 기간 중 도매물가 상승률은 이미 29%에 달했다.
2월을 고비로 국제원자재 시세가 고개를 숙이고 원유가격도 안정을 보이자 국내 물가도 5월부터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9월중에는 내외수요감퇴에 따른 하락요인까지 가세, 도매물가가 전월보다 0·3% 하락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경부는 내외여건에 호응, 9월12일에는 1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l0% 인하하는 한편 10월 들어서는 11개의 최고 및 기준가 지정품목에 대해 가격규제를 해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해외수요증가의 둔화에 마른 불황 심화현상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 정부는 이제까지의 총수요 억제정책에서 경기회복으로 정책의 역점을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2·7 환율인상과 「에너지」 및 철도운임 인상, 12·16 물가조치는 이 같은 여건변화를 배경으로 한 정책전환을 드러낸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까지는 경기침체를 각오하고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물가상승을 감수하고라도 경기를 살려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수행 과정에서 정부가 드러낸 조령모개식 자세와 관계자들의 식언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있다.
12월16일의 물가조치로 정부는 1주일 전 사전승인품목으로 지정했던 58개 품목 중 38개 품목을 자유화하는 변덕을 부렸다.
어쨌든 정부의 기본방침이 물가의 고삐를 풀고 경기회복에 정책의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인플레」 파고는 내년에도 계속 꼬리를 끌어 도매물가 상승률은 20% 이상 기록할 것으로 관계 전문가들은 전망하고있다. <신성순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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