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심벌화… 우탄트 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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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우·탄트」 전「유엔」사무총장의 유해를 둘러싸고 「버마」정부와 반정부 세력간에 일고 있는 충돌을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보다 낫다』는 옛말을 실감나게 해 주고 있다. 「우·탄트」박사(65)는 지난달 25일 「뉴요크」에서 피부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지난 1일 「랭군」으로 운구되었는데 그가 생시에 현「네·윈」정권에 지극히 비판적이고 「우·누」 전 수상과 친교가 깊었던 때문인지 「네·윈」정권은 처음부터 이 세계적 정치가의 유해를 냉담하게 취급했다.
공항에는 정부 대표의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며 정부는 조화나 조문 한장 보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그의 장지를 평범한 공동묘지로 정하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가족들은 5일을 장례일로 정하고 「캰도우」 공동묘지에서 예식을 차릴 준비를 서둘렀다.
화창한 이날 묘지에는 5만여명의 학생 및 불교 승려를 포함한 50만명의 조객들이 몰려들었다. 「탄트」의 장례식이 반정부 의사 표시의 계기가 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정부는 정부대로 이 반정부 인사의 유해를 냉대함으로써 「우·탄트」를 하나의 「심벌」로 삼았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이러한 정부 조처에 정면 대결함으로써 「우·탄트」의 유해를 반정부 의사 표시의 「심벌」로 삼았다.
장례 행진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에 학생과 승려 일단이 달려들어 「탄트」의 유해를 빼앗았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정부가 「탄트」의 지위에 맞는 능을 마련할 때까지 유해를 보관하겠노라고 통고하고 「랭군」 대학 학생회의 실로 유해를 끌고 갔다.
학생과 승려들은 「랭군」 대학을 점령하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조객들을 안내했다. 그러자 정부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 소요가 일어날 것을 우려,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로부터 사흘 동안 「랭군」대학에는 수백만명 조객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탄트」의 능 건립 기금으로 4백80만원 상당의 돈을 헌금했다.
학생들은 ①「탄트」의 신분에 맞는 능의 건립 ②국장 선포 ③관계 학생들의 처벌 반대 등 요구를 내걸었다.
그러나 정부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62년 3월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네·윈」 정권은 식량 부족과 그 동안의 실정으로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 과거처럼 폭력으로 이 움직임을 깨뜨리려 들지도 않고 방관했다.
한편 여당인 「버마」사회당은 「탄트」의 묘지 건립을 위해 보다 나은 장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랭군」 대학의 공과대학생들이 「캠퍼스」안에 이미 새로운 묘지를 건립한 뒤였다. 학생들은 도서관 건설을 위해 학교가 준비해 놓은 자재를 모두 여기에 사용, 훌륭한 능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정부가 우리 것보다 더 훌륭한 능을 건립하지 않는 한 「우·탄트」는 여기 남아 있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있자 정부는 처음으로 성명을 발표, 「탄트」의 묘지를 「파고다」가 부근에 세우겠다고 말했지만 학생들은 이 제의를 묵살하고 대학 내 묘지에 유해를 안장했고 몰려선 수십만의 조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우·탄트」는 죽어서 「네·윈」 정권에 가장 큰 두통거리를 안겨 주고 있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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