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록의 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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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상당히 오랫동안 여하튼 「자율」의 테두리 안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던 언론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의 말이었지만, 언론이 스스로의 사명을 잊고 있다는 좀 심한 욕설이었다.
이에 「자율」만을 알고 「자주」를 모르던 역시 『일부 젊은 언론인』들이 흔들린 듯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율」아닌 「자주」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자주」가 있기 전과 후의 지면이 얼마나 다른지는 다만 독자의 눈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새 사건을 쫓아 나날을 보내기에도 힘겨운 언론인이란, 짐승을 쫓는 포수와도 같아서 산을 볼만한 눈이 없기 때문이다.
「자율」과 「자주」, 언뜻 듣기에는 4촌간 같지만 적어도 지금은 별로 촌수가 안 닿는 듯하다. 그러면 예전에는 어떠했던가. 우리 부조들은 당쟁의 와중에서도 사필만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살았다. 곡필을 하면 인화는 면할지언정, 천주는 피할 길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기에 차라리 「사화」라는 이름 아래 사람에게 목숨을 뺏기는 길을 택하기조차 하였다.
「비젼」이란 말조차 못 듣고 살던 양반들이라, 식견인지 고집인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가졌던 그 무엇을 기개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지. 『천지간에 문장이 끊이지 않아야 함은 그것이 도리를 밝히기 때문이다. 정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는 바를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선을 말함을 즐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 익이 되고 앞날에도 익이 된다. 한 편이라도 많을수록 그만큼 익이 있다.』 명말 청초에 신학풍을 일으켰다는 고염무(1613∼1682)의 『일지록』에 나오는 말이다.
어딘지 우리의 조상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대」가 당시에는 더욱 강렬히 작용하여 그랬을까. 아무리 「사대」라도 목숨을 걸고 동조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일전에 어떤 정객이 여야를 같은 비중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언론을 나무랐다. 별 잘못도 없이 화풀이를 당한 언론이 쏜 웃음을 지으며 피했으니 약자의 현명한 처사였다고 접어 두기로 하자.
그 뒤 바로 어떤 대학 총장도 또 언론을 비방했다. 그 분이 모종 사건으로 경찰의 내사를 받은 사실을 보도해서 곤경에 빠졌으니 언론 때문이란 것일까. 경찰보다 약한 언론에 화풀이를 하는 심정도 이해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것저것 다 접어 두고 보니 언론은 설 땅이 없다.
쓸개를 쑥 뽑아 버리고 만인에게 아부하려 한들 사람마다 이해가 다르니 두루 기첩될 팔자조차 타고나지 못하였다. 어설프게 약하니 아직 동정을 바라고 싶지도 않다.
약한자여, 그대의 이름은 언론이거니와 길은 멀고 해는 저문 데 그 무거운 발길을 어디로 옮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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