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새해 세 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종래의 근로소득세법이 안고 있던 최대의 결함은 「인플레」 때문에 실질 소득은 별로 늘 지 않았는데도 명목소득이 약간 늘어나기만 하면 여지없는 누진적인 고율 과세로 근로자들이 월급 봉투를 받을 때마다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그 결과 지난 몇 햇 동안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 긴급조치의 발동을 보기까지에 이르렀었다.
이런 뜻에서 새 종합소득세제가 봉급 생활자의 과도한 세 부담을 상당히 경감시키는 고려를 하고 있음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근로 소득층의 60%이상이 월평균 임금 3만원 미만이라는 실태를 감안할 때 면세점을 3만원으로 하고, 여기에 몇 가지 부양 가족 공제제를 택한 것이라든지, 연말 「보너스」 급여액 12만원까지의 면세 조항을 두기로 한 것 등은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에게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낭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난 1일의 여당 단독 국회에서 무더기로 통과된 각종 개정 세법이 국민 생활에 미칠 영향을 종합 평가 할 때, 국민은 여전히 과중한 세 부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으며, 그중에도 특히 건전 사회의 근간이라 할 중산층 문제에 정부가 너무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새해 예산에 계상된 내국세 수입이 비전년 59.1%의 급증을 보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종합소득세제의 실시로 약간 경감된 근로층의 소득세 부담은 그보다도 훨씬 늘어난 각종 간접세 부담으로 상살될 수밖에 없으며, 월 수입 10만원 정도의 중산층은 새 종합소득세법의 시행 이후에도 생계비를 무시한 과중한 누진 세율의 적용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 세제 문제를 검토하는데 있어서는 경제적 차원과 사회경제적인 차원이 때로는 조화되고 때로는 상충되는 면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빈부의 괴리 현상이 확대되면서 공평성에 대한 요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나 이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회적·경제적인 안정이라는 측면을 소홀히 다루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공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자칫 중산층의 육성을 통한 사회적 안정의 구축이라는 시민 사회의 중핵 문제를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세정은 어디까지나 양성화된 소득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고 소득층과 실질적인 고소득층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 67년의 세제 개혁에서 월급여 8만원 이상에 대해 55%의 세율을 적용한 예도 바로 실질적인 고소득층과 통계상의 고소득층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야기된 모순이었다. 그 결과 중산층으로 당연히 육성되어야 할 중견 봉급 생활자만이 혹독한 세수 압력에 밀려 상대적 빈곤화를 강요받았고, 결과적으로 빈부 양극화를 촉진시키는 역리를 낳았던 것이다.
물론, 그 동안의 몇 차례에 걸친 세법 개정으로 그러한 모순이 어느 정도 완화된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이 문제는 만족스럽게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 세법상으로도 연봉 3백만원 수준이라면 고소득층이라고 간주되어 근 90만원의 세금을 납세해야 하나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수준의 봉급을 받으려면 평균 40세 이상의 연령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납세 후 가처분 소득은 생활 여건으로 보아 생계 절대 선을 오락가락 하는 실정이란 것은 솔직이 인식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근로자 평균 임금이나 도시 근로자의 평균 생계비가 이들 월봉 수준의 3분의1 수준이니까 이들은 분명 고소득층이며, 때문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감정론이 제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법에 투철하다 보면 종합소득세 면세점을 사실상 5만원 이상으로 올린 것은 사치스러운 이야기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생계를 유지하고도 남는 잉여에만 과세해야 한다면 결국 저축에 과세해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원래 세제는 극단론이나 감정론으로 다루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 공리이다. 저소득층 보호에 열을 올려 중산층을 파괴하는 모순을 범하지 말고 시민 사회의 안정 기반으로서의 중산층 문제를 세제면에 충분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