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원서대 없어 울고 있는 여동생보고|경장 외아들 권총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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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홍성=김원태 기자】1일 상오 10시30분쯤 홍성 경찰서 정보 3계 근무 엄양섭 경장 (43·홍성군 홍성읍 고암리)의 외아들 기배 군 (17·홍성고 1년 5반)이 집안이 가난한 것을 비관, 자기 집 건넌방에서 45구경 권총으로 오른쪽 가슴을 쏘아 자살했다. 엄군은 이날 조기청소회에 참가했다가 상오 8시쯤 귀가, 동생 명숙 양 (14·홍성여중 3년)이 여고 진학 원서 대금 7백원이 없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 주머니에 있던 3백원을 꺼내 아버지에게 주면서 『똑같은 자식인데 진학은 시켜야되지 않겠느냐』면서 눈을 흘겼다.
엄 경장이 지갑 속에서 비상금 2백원을 꺼내고 집 앞 가게에서 2백원을 빌어 명숙양에게 주고 출근하자 엄군은 건넌방으로 건너가 전날 아버지 「백」속에서 훔쳐 두었던 실탄 2발이 장전된 권총으로 오른편 가슴에 1발을 쏴 자살했다.
이 권총 (총기 번호 898866)은 사망한 엄 경장의 맏형 근섭씨 (사망 당시 31세)가 서산군고북면 치안대 감찰부장으로 있을 때 사용하던 것으로 엄 경장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었다.
엄군의 어머니 이근영씨( 40)는 아침 일찍 식량을 구하러 30리 떨어진 홍북면 친정 집에 가고 없었으며 홍군의 자살은 출근했던 아버지 엄씨가 예감이 이상해 집으로 돌아갔다가 발견했다.
죽은 엄군은 1남 6녀 중 외아들로 평소 부모에게 남들처럼 호강시켜주지 못하려면 왜 자식을 많이 낳았느냐』면서 불평이 잦았으나 학교에서는 우수반에 편성될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엄 경장은 56년4월17일 경찰에 투신, 대통령 방위 포상·국방부장관 기장·8차례의 서장포상 등을 받았고 전국 정보 신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우수 경찰관이었다.
그러나 봉급과 정보비 등 월수입 4만여원으로 전셋집에서 살며 9식구를 겨우 부양해 왔다.
숨진 엄군의 담임 조남강씨(39)는 엄군은 평소 명랑하고 명석했으며 자살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학부형과 교사간의 상호 연락이 없어 가정 환경을 잘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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