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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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5년도 예산안은 12월1일의 일요 국회에서 신민당이 불참한 가운데 확정되었다. 정부 원안보다 3백억원이 증액된 총규모 1조2천9백19억원의 75년도 예산은 정부 원안을 실질적으로 그대로 통과시켰다는 점에서도 하나의 기록이다.
당초 정부가 작성한 75년도 예산안은 새해의 경제 전망에 대한 뚜렷한 예측을 할 수가 없는 유동적 상황하에서 편성했던 것이기 때문에 국회가 이 같은 예산 편성상의 애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따라서는 정부 원안이 크게 수정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회가 고유한 기능인 예산 심의권을 철저히 행사함으로써 적정 예산이 짜여지기를 기대했던 일반 국민으로서는 이번과 같은 예산안의 전격 통과에 대해 불안을 감출 수 없다.
74년의 예산도 그것이 성립된 지 월여만에 1·14조치로 크게 수정된바 있었던 점을 상기할 때, 경기 전망·내외 정세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는 곧 예산의 구조나 특성과 직결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75년도의 경기전망·정세변화 등 기본 요소들을 검토치 못하고 서둘러 정부원안을 확정시킨 국회의 예산심의 태도는 75년도 예산의 또 다른 수정을 필연적으로 예고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국회에서 확정된 이상 75년도 예산에 내포된 문제점은 행정부가 알아서 조정집행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때문에 예산 집행 과정에서 깊이 유의해야 할 사항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전년 60% 늘어난 내국세>
우선 세입면에서 내국세 수입이 74년 규모에 비해 59.1%나 늘어났고, 관세 수입은 83.6%나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경기 경향과 관련시켜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
물론 74년도 추경 예산에서 73년도의 호경기 요인과 74연도의 물가 요인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74년도 최종 예산에 비해 내국세 수입 증가율은 19%밖에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74년도 하반기부터 경기가 하강 국면을 뚜렷이 보였으며 75년도 상반기 중에 경기가 가장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이 시점에서 내국세 문제를 평가한다면, 75년도의 내국세 수입은 최소한 74연도의 수준으로 억제했어야 할 것이다.
74년 중의 내국세 수입이 이례적으로 팽창된 원인은 73년 중의 호황과 8·3조치 이후 눌러 왔던 물가를 현실화시킨 특수 요인에 전적으로 귀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소멸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반전되 이 시점에서 올해보다 다시 19%나 내국세 수입을 늘려 잡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75년 중에도 물가 상승률이 크게 절화 될 전망은 없으며, 때문에 물량면에서 성장의 여지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명목 소득은 계속 늘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물가 상승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내국세 수입 증가가 보증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가 상승율과 동시에 물자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출 및 투자가 호전되어야만 비로소 과세 원천이 형성되는 것이다. 만일 물가는 계속 오르는 데 수출과 소비는 계속 정체한다면 결과적으로 재고는 쌓일 망정 과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관세 수입을 74년도 본예산보다 83.6%나 증가 책정한 논리적 근거를 깊이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관세는 수출 지원 부문과 중화학공업 등 기간산업 부문의 시설에 대한 감면 때문에 징세 실적보다 감면 실적이 높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관세 감면폭만 줄여도 당장 관세 수입이 2배 이상 늘 수는 있을 것이다.

<수출 추세 외면한 관세 전망>
그러나 수출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관세 감면폭을 축소시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것이다. 관세를 감면 받고도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환율 조정도 없이 대폭 관세 부담만 늘릴 수 없으리라는 것은 상식 이전의 상식이다.
만일 환율을 조정하지도 않으며, 수출 분야 및 기간 산업 투자에 대한·특혜를 크게 줄이지도 않는다는 가정이라면 결국 75년도의 수입 수요를 크게 잡아야만 관세 수입 증가는 합리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1일부터 수입 억제 정책이 집행되고 있는 실정으로 보아 그렇게 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관세 수입 증가가 수출이나 기간 산업 투자와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 조금 더 깊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 소비 과다한 세출 구조>
한편 본예산 기준으로 4천1백14원이 늘어나는 예산 규모의 세출 배분을 보면 일반 경비 증가 1천6백82억원, 국방비 증가 1천3백15억원, 투융자 증가 8백19억원, 그리고 토지 금고 출자 3백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산 규모 증가분의 20%만이 투융자 증가로 배분된 반면, 80%는 정부 소비 증가에 투입되고 있다. 이처럼 재정의 한계 소비 성향이 높은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긴장 요소에 기인되는 것이라 하겠으나, 재정 소비를 과연 그 이상 억제할 길이 없었겠는가.
올해 예산에서도 많은 전용과 불용액이 발생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예산을 가급적 확대해 놓고 여유 있게 집행하자는 태도만 시정할 수 있었다면 재정 소비의 이 같은 팽창은 대폭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봄이 옳다.
끝으로 75년도 예산이 경기 전망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전제로 해서 편성된 것이 아니라면, 재정의 경기 대응 요소가 그만큼 확대되어 계상 되어야 했을 것이나 그것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재정의 경기 대응 요소로서 주목되는 세제와 투융자 중 세제 개혁안은 74년도의 호경기와 경기 전망에 대한 낙관을 배경으로 해서 상반기 중에 이루어졌음을 직관할 때 나머지 「카드」는 투융자밖에 없다.

<경기 조정력 못 가진 투융자>
그러나 투융자 증가분 8백19억원은 물가 요인을 흡수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지 경기 조정 여력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재정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예산 팽창 하에서는 재정의 경기 조정력에 기대할 여지가 적다는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재정에 경기 대응 요소가 크지 않다면 경기 대책은 결국 금융적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황기에 금융정책의 효과는 가장 낮아진다는 공리를 인정한다면 결국 경기 정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냐 하는 본질 문제로 돌아간다.
결국 투융자의 조기 집행만이 경기 대책 요인으로 남아있는 새해 예산의 문제점을 집행 과정에서 조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75년도의 예산은 다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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