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 26번의 의사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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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기의 「공자세가」에서 사마천은 이렇게 썼다. 『…이로써 노의 대부의 정치를 어지럽힌 소정묘를 주하였다….』
이것은 공자가 56세에 법무상이면서 재상의 직무를 대항했을 때의 일이다. 그런지 3개월 후에 노 나라에서는 폭리를 하는 상인이 없어지고, 문란했던 풍기가 바로 잡히고 치안이 확립됐다고 사마천은 밝힌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공자를 마냥 칭송만하고 있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가운 「아이러니」가 엿보인다.
공자가 소정묘를 죽였다. 그러자 치안이 바로 잡혔다는 말에는 공자의 덕정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사마천은 공자는 비판하려던 것은 아니다. 공자도 평소에 법치에 반대하던 덕치주의자였다.
그런 공자가 소정묘를 죽인 것은 법치주의자로 표변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공자는 정치가가 되기 전에만 덕치를 강조한 셈이 된다.
덕치란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정치가의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 평론가로서의 공자가 법치에 반대하고, 덕치를 강조했던 것에 잘못은 없다.
동시에 정치가가 된 다음에 그가 덕치보다도 법치에 더 중점을 둔 것도 크게 탓 할 일은 아니다.
사마천은 정치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을 다스리는 정치가 덕치라는 이상에만 흐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공자에 대한 비평에 앞서 공자와 같은 덕치주의자도 권좌에 앉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려 했었나 보다. 정치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교훈을 주려 했었는지도 모른다.
1일밤 국회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사상 초유의 액수인 1조3천억원에 이르는 75년도 예산안을 비롯한 76개 법안 등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의사봉을 친 횟수만도 4백26번. 아마도 이것 역시 「키네스·북」감이 될지도 모른다.
예산안이 여당만의 참가리에 이처럼 일사천리에 통과된 것은 국민을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제출한 원안보다도 오히려 3백억원이나 증액된 채 무수정 통과시킨 것도 세계 의정 사상 기록으로 남을 일이다.
예산이란 나라의 일년 살림살이다. 그것도 1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그게 단 몇 시간의 심의로 딱딱딱해 버렸으니, 그야말로 딱하고 딱하고 또 딱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정치란 법치의 비정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치를 강조한 공자의 존재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덕치만으로는 정치가 되지도 않는다. 공자가 소정묘를 주했다는 모호한 사실을 굳이 사마천이 들춰낸 까닭도 이런데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현실은 덕치도 법치도 둘다가 결여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그럴 때에도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정치의 논리며 윤리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야당에선 3일부터 국회로 돌아가기로 결의했었다. 그것을 시민들이 반기기가 무섭게 여당에선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꽤나 멋진 「카운터펀치」라고 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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