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룬 고아 소녀…아버지 찾아 13년|소년원 보도원의 집념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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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3년 동안이나 고아로 지내면서 부모를 찾아 헤매던 김명자 양 (19)이 법무부 안양 소년원 직원 시병호씨 (35)의 집념으로 지난 18일 꿈에서도 그리던 아버지 김한기씨 (43·서울 영등포구 화곡동 343의 54)의 품에 안겼다.
기적같이 재회한 아버지와 딸은 말을 잃은 채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본 시씨도 눈시울을 적셨다. 시씨가 김양의 가족 찾기에 나선 것은 73년10월께. 김양이 절도 혐의로 안양 소년원에 수감돼 온지 6개월쯤 돼서였다.
소년원에서 김양의 보도원이었던 시씨는 6세 때 집을 잃고 고아가 됐다는 김양이 착하고 성실한데 이끌려 소년원안 직조 공장에서 일을 시키며 훌륭한 기능공으로 만들 결심을 했다. 그러나 김양의 퇴원 일자가 가까워지자 소년원을 나간 후에도 떳떳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길은 오직 어딘가 살고 있을 김양의 부모를 찾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 김양의 6세 때 기억을 되살려 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김양은 아버지 이름이 「한규」 또는 「한기」며 삼촌 이름이 「동규」 또는 「동기」라는 것과 어렸을 때의 집이 「굴다리」근처였고 집 가까이에 학교가 2개 있는데 한 학교는 흰 제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항상 드나들었다는 기억을 되살려 냈다.
시씨에게 이만큼의 「힌트」만도 여간 큰 수확이 아니었다. 시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시간 날 때마다 김양을 데리고 서울의 굴다리란 굴다리는 모두 찾아 다녔다.
한번 갔던 곳도 몇번씩 다시 찾아 김양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했다. 이러기를 1년. 성동구 왕십리 굴다리를 찾았던 지난 10일 김양은 철길을 따라 몇번인가 걸어보고 나서 『뭔가 눈에 익은 것 같다』고 했다.
첫 관문을 뚫은 시씨는 그곳이 바로 김양이 산 집 근처라 단정하고 굴다리 근처의 행당 국민학교와 무학 여중을 찾아내 1주일을 계속 김양과 함께 현지 답사를 마쳤다.
그때부터 시씨는 행당 1동·2동·3동은 물론 이웃 동사무소에 찾아가 동적부·예비군 편성명부 등을 뒤져 성도 모른 채 「한규」 「한기」등과 비슷한 이름을 모두 「체크」, 끝내는 행당 3동사무소 동적부에서 「김한기」 「김덕기」란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음을 찾아내는데 성공하고 이들의 전출지를 찾아 김양의 가족을 만나기에 이르렀다.
김양이 집을 잃은 것은 6세 때인 지난 61년 여름. 아버지 김씨와 이혼, 김양 곁을 떠난 어머니 이모 여인 (40)이 그리워 돌연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
거리에서 울고 있던 김양이 경찰관에 이끌려 처음 찾아간 곳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 68의「베델」 고아원.
이곳에서 김양은 고아 아닌 고아의 몸이 되어 장위 국민학교를 거쳐 동구여중에 진학했으나 중학 l학년 때 철이 들면서 부모를 찾겠다고 어느날 다시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김양은 그 뒤 학교도 중퇴, 부산·대구 등지에서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전진하다 서울로와 독서실에서 어느 학생의 가방 속에 든 저금통장을 훔치다 발각돼 마침내 소년원까지 가게 됐었다. 아버지 김씨는 딸을 찾아준 시씨에게 그저 고마와 어쩔 줄 몰라했다. <김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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