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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품 공작소 팹랩 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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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원장

2년 전 미국에서 15세 소년 잭 안드라카가 5분 만에 정확히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옴미터(Ohm Meter)’라는 이 키트의 가격은 단돈 3센트. 1회에 800달러가 드는 고가 장비로도 조기 발견율이 30% 남짓이던 기존 검사와 비교하면 혁명적인 성과였다.

 과학적 재능과 열정을 가진 한 소년의 아이디어가 빛을 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구 결과를 실험으로 입증하기 위해 안드라카는 대학·연구소의 전문가들에게 연락했다. 200통이 넘는 e메일에 대한 답변은 침묵과 거절이었다. 묻힐 뻔한 아이디어를 살려 낸 것은 존스홉킨스대학 마이트라 교수였다. 눈 밝은 그가 내준 실험실에서 안드라카는 7개월간 시행착오 끝에 옴미터를 만들어냈다.

 안드라카의 사례는 창업 강국 미국에서조차 기술 실용화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디어 실용화 과정을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이유다. 어렵게 실용화에 성공해도 신생 기업이 시장에서 장수할 확률은 높지 않다. 창업이 어려운 이유는 창업자가 직접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쿼키’ ‘테크숍’ ‘이노센티브’처럼 창업 지원 플랫폼들이 성업 중이다.

 우리나라도 일반인들의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이어줄 플랫폼이 늘고 있다. 지난해 4월 세운상가에 ‘팹랩 서울’이 문을 열었다. 제작(Fabrication)과 실험실(Laboratory)의 합성어인 팹랩은 3D 프린터 등 디지털 장비로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작소다. 정부 주도로 출범한 ‘창조경제타운’에선 누구나 아이디어를 등록하면 3000여 명의 멘토들이 단계별로 지원해준다. 과학기술 분야 25개 출연 연구기관이 힘을 모은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도 중소기업의 기술 사업화를 지원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결실을 보고 그 씨앗에서 다시 싹이 틀 날이 머지않았다.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