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왕릉 파헤쳐 관광수입 올린 대서야…|김재원<철박·초대국립박물관장·학술원 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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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발굴사업에서 이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던 거금을 들여서 발굴하였다는 155호 분에서는 그러면 무슨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나? 모든 학자·호고지사들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 무덤에서 나온 새로운 것이라고는 천마도와 서조도 외에는 별로 신통한 것이 없다. 귀고리 하나 더나왔다느니 또는 청동기의 종류가 어떻다느니 하여도 그것은 일반 신문독자의 흥미를 끌뿐이고 그 때문에 그러한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우리의 역사적 자랑의 하나인 경주고분의 주요한 부분을 없애버리기는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98호 분의 유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금으로 된 고배가 나오고 칠기 위에 글자를 쓴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 때문에 저 고분을 발굴하여야 되었을까 모르긴 하여도 이제부터의 부장품 중에 이때까지 보지 못하던 유물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형인 고분 두개를 병신으로 만드는 대가는 될 수 없다.
도대체 그러한 거금을 들여서 필요치도 않은 발굴을 하는데는 회의를 가지는 사람은 나뿐이 아닌 것 같다.
일전에도 보도되었거니와 서울근교의 백제고분은 고고학 상으로 중요성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50여일의 작업에 인부임까지 합쳐 1백여만원의 예산으로 할 수 없이 발굴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왜 급하지도 않은데 국고에서 수천 만원을 써야 하나? 이런 의미로 지난번 역사학대회에서 모 중견교수가 질문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이에 대하여 발굴담당자인 문화재 관리국의 김정기씨는『정부의 방침에 따라서』발굴한다는 뜻의 답변이 있어 학회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경우『정부의 방침』이란 문화재관리책임당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관리국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이 이상 경주지방의 특색을 없애는 무모한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혹자는 경주의 발굴이 관광객 유치의 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발굴된 고분을 그대로 내부를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한 것이 관광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새 고분을 발굴하지 않고도 가능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으로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우리의 왕릉을 파서까지 관광객들의 돈푼을 벌어야 된다고 하면 무한한 비애를 느끼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 우리 나라의 고고학자들의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급한 것은 신라의 완형 고분을 헤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7, 8년 사이에 경주지구만 하더라도 많은 고고학인원들이 동원되었다. 그때마다 발굴단장의 발언이 소개되었으나 진짜 보고서가 나온 것은 드물다. 듣자하니 경주박물관 창구에는 여러 발굴단이 채취한 고물이 산적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정리·조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나 아예 조사·연구하여 보고서를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방치하여 버린다면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신문고고학」「신문고고학자」라는 술어가 생길 형편이니 학계를 위하여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쩌다 선을 뵈는 보고서도 조잡하여 외국학계에 내 놓기도 어려울 정도의 것이 있음을 묵과할 수가 없다.
하기는 우리 나라의 고고학은 해방과 더불어 영에서 출발하여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여 주는 바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어도 발굴작업의 진행과 보고서작성에는 최선을 다하였다는 노력과 성실성이 나타나야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엿보이지 않는다면 한국고고학의 장래는 기대할 것이 없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해방 후 30년에 과연 얼마만한 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졌나?
근자 일본에서는 그들이 우리 나라에서 조사하고 보고서를 내지 못한 것을 40년 후의 지금에 이르러 출판하고있다. 그중 첫 책인「악낭한묘」제1책이 이미 나왔고 제2, 제3책이 나올 모양이다.
이들 발굴보고서를 보면 최근 우리의 보고서를 뺨칠 정도다. 또 실제로 우리의 최근 보고서를 보고『적어도 좋은 도판이라도 넣어 주어야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필자에게 불평을 하였다.
일찍이 우리고고학도 계열의 일원이던 사람으로 그들의 비판에 나는 대할 말을 몰라서 땀을 흘린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