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천원 선의 고미가 정책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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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결정한 올해 쌀 수매가격 80㎏ 한 가마당 1만5천7백60원은 작년의 그것보다 38.5%가 인상된 것이다. 얼른 보기엔 꽤 많이 오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 당국은 이로써 고미가 정책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그 까닭은 인상율 38.5%는 올 들어 9월말까지의 도매 물가상승율 33.5% 보다도 높으며, 주요 도시 소비자 물가상승율 23.8%보다도 높고, 7월말까지의 농가 구입가지수 상승율 24.6%와 농업용품 구입 가격지수 상승율 9.9%의 어느 것보다도 훨씬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법 그럴 듯한 근거 제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쌀값 인상율 38.5%가 높은 것이라는 소명 자료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이번 쌀값 결정방식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불합리한 것인가를 밝혀 주는 근거가 된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고미가 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정책이 쌀값 결정의 근거를 고작 그런데서 찾고 있는가를 반문하고 싶다.
쌀값 인상율을 다른 물가와 비교하려면 우선 비교기간이 같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쌀값 인상율 38.5%는 1년 전의 쌀값과 비교한 것이고 도매 물가상승율이나 그 밖의 각종 물가상승율은 9개월간 또는 7개월간의 상승율이므로 이로써 쌀값 인상율이 일반 물가 상승률 보다 높다 하여 고미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궤변이다.
그러기 때문에 농정당이 고미가라고 결정한 가격은 결국 산지 쌀값 1만6천원에도 미달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고미가가 아니라 시장미가를 도리어 끌어내리려 하는 저미가인 것이다. 고미가의 냄새를 풍기려면 아무리 못하여도 추수기의 산지 미가를 하회하는 것이 돼서는 안될 것이 아니겠는가. 추수기의 싼 산지 미가도 안되는 수매가를 두고 고미가라고 한다면 그 고미가란 무슨 뜻인지를 도시 알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가마당 1만5천7백60원의 쌀 수매가는 고미가도 아니요, 하물며 적정 미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1년간의 전국 도매물가만 하더라도 43%가 올랐다면 그것이 쌀 수매가 인상율 38.5%보다 높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숫자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식품류를 제외한 도매 물가상승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49%였다는 사실도 당연히 참작되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또 한편, 고미가 정책이란 단순히 농가에 대한 가격 보상만 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득보상의 고려까지 있어야 마땅하다. 도시 노동자에 대한 농가의 상대 소득비를 73년의 87.4%에서 90%정도까지라도 높이려면 쌀값은 적어도 50%정도는 인상돼야 하는 것이다.
하다 못해 연 2%의 미곡증산을 위해서도 이번 수매가는 52.7% 인상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국제 미가만 하더라도 한 가마의 쌀값은 벌써 2만4천원 선을 넘은지 오래다. 국제 미가가 쌀 때는 국제미가를 내세우던 미가 정책이 국제 미가가 비싸니까 이에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도 고미가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렇듯 가마당 1만5천원대 쌀값은 어느 모로 보나 증산을 고취하고 농가소득의 향상을 기하며 미곡소비 절약을 가져올 수 있는 고미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모든 점에서 값으로 쌀 수매가 강행돼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쌀값과 수급을 시장 기능에 전적으로 맡겨 두는 것이 도리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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