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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환자가 응급실에 31시간 머문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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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

13일 오후 서울 강동구 보훈병원 응급실. 대낮인데도 29개 병상은 가득 차 있었다. 이러다보니 심근경색·뇌질환 등 위급 환자(중증응급환자)가 이곳에 오면 꼬박 하루 하고도 한나절 가까이(31.1시간) 응급실에서 기본 처치를 받다가 중환자실이나 수술실로 간다. 이 병원 직원 김효중씨는 “환자 대부분이 국가유공자인데 지방에서도 온다”고 말했다. 체류 시간이 길다 보니 야간에는 응급실 곳곳에 환자가 드러누워 있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13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자료에 따르면 인제대 부산백(20.5시간), 조선대(19.1시간), 화순전남대(16.7시간) 병원도 응급실 체류 시간이 만만치 않다.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병원도 14.4시간이다. 430개 병원의 평균 응급실 체류시간은 4.9시간(중증환자는 5.9시간)이다. 영국(4시간)에 비하면 길다. 응급실 처리 능력이 달리기 때문이다. 병상 수 대비 응급환자 비율인 포화지수는 서울대병원이 177.1%다. 경북대(140.3%), 전북대(132%) 등도 높다.

 응급실에 중증환자가 오면 위급한 처치를 먼저 하고 나서 중환자실이나 수술실로 이동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목숨을 구하고 후유증을 줄여 진료의 질이 올라간다. 응급실에 오래 있으면 환자에게 좋을 게 없다. 중환자실이 부족한 데다 야간에 수술할 인력이나 환경이 받쳐주질 못하니 응급실에서 머무는 것이다.

 응급실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의사나 간호사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데가 부지기수다. 특히 군(郡) 지역 등 ‘취약지’ 응급의료기관 84곳은 법정 기준(전담 의사 1~2명, 전담 간호사 5명 등)을 충족한 비율이 63.1%에 불과했다. 전체 평균 81.4%에 한참 못 미친다.

 응급실은 대표적인 ‘시장의 실패’ 영역이다. 현행 수가와 인력 구조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원가보존율이 68%(전체 의료 평균은 87%)에 불과하다. 경각에 처한 목숨을 살리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는 응급실과 이어지는 중환자 진료시스템에 달렸다. 올해 복지예산은 106조원이지만 응급의료 투자는 약 2000억원(0.19%)에 지나지 않는다. 대선 공약이라고 해서 4대 중증질환에 돈이 빨려 들어가고, 3대 비급여(선택진료·상급병실료·간병비)에 향후 4년간 4조5000억원이 들어간다.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우선순위를 따져보자. 응급실-중환자실로 이어지는 응급환자 진료체계 개선이 훨씬 중요하다. 이것만 제대로 잡아도 한 해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리고, 치명적 후유장애를 막을 수 있다.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