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순간 멍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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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판정의 문세광>
『피고인 문세광 사형』- 상오10시43분 재판장이 30분간에 걸친 판결문을 읽은 끝에 마지막으로「사형」하고 주문을 읽자 문세광은 극히 짧은 순간 움찔하는 듯 했으나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3차례의 법정자세가 그러했듯 문은 중앙정면을 응시한 채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수갑을 찬 두 손으로 바지를 문질렀다.
지난7일 첫 공판이 열린 지 만 12일째-. 문은 자신의 범죄가 『민족과 자유민주주의의 범죄자로 처형되어 마땅하다』는 재판부의 판결선고에도 얄미울 만큼 무표정한 태도였다.
상오10시10분 권종근 부장판사가 긴장된 분위기를 깨고『피고인 문세광 앞으로』하고 법대 앞에 세운 뒤 이어 문에 대한 범죄사실·정상·법률적용·주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법률적용에 이어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 주문이 낭독되어도 문의 꼿꼿한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잠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문은 이날 출 경에 앞서 그 동안 교도소에서 친해진 교도관에게『수고가 많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코피」나 한잔 같이합시다』고 요청,「코피」를 마셨고『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굳은 표정으로 싱긋 웃기만 했다고 한다.
이날 서울형사지법이 발행한 방청권은 모두 2백37장.
이 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이후 법원 당국은 이례적으로 공판 때마다 별도의 방청권을 발행하는 등 보안조처에 신경을 썼다.
법원이 발행한 방청권은 1회 때는 흰색, 2회 때는 노란색, 3회 공판 때는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상오11시6분 공판이 끝나자 문은 피고인 석으로 찾아온 송명관 변호사에게 꾸벅꾸벅 절을 했다.
송 변호사가『항소하겠느냐』고 묻자『항소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문은 또 그 동안 통역을 해준 조윤제씨가 다가오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미안합니다』고 가볍게 웃기도 했다.
통역이 끝나고 권 부장판사가『불복이 있으면 항소할 수 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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