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운 기자의 '여론다움'] 설 이후 발표된 부산시장 여론조사 "많이 당황하셨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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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운 전문기자

지난 주말 부산지역 언론사 세 곳이 부산시장에 대한 지지도 여론조사를 실시해 10일 동시에 발표했다. 설 이후 민심 향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조사를 실시한 언론사와 조사기관에 따라 지지도가 상이하게 나와 가뜩이나 혼란했던 양상이 더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국제신문-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 34.5%, 새정치신당 오거돈 전 장관 28.2%, 민주당 김영춘 전 의원 5.3%였고, 권철현 전 주일대사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경우엔 권 전 대사 35.6%, 오 전 장관 28.4%, 김 전 의원 6.1%였다. 부산MBC-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수치가 비슷했다. 그러나 KBS부산총국-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3자 대결의 경우 오 전 장관(41.9%, 41.7%)이 새누리당 서 의원(38.5%)과 권 전 대사(39.8%)를 모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정치권과 언론에선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세 곳의 여론조사 결과에 “많이 당황한” 건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번 조사를 통해 누가 앞서고 누가 뒤처지는지 명확히 알고 싶었는데 더욱 헷갈리게 됐다는 것. 둘째, 이와 관련해 왜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세 곳의 조사결과가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 셋째,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다시 말해 정확한 여론인지 궁금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론조사로 정답이나 해답 얻겠다는 생각 버려야

후보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해서 혼전 양상이 더 깊어졌다고 하는데, 도대체 뭘 모르겠다는 건가. 이만하면 유권자들이 선거 4개월 전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서로 자기가 앞서고 있다면서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고 있지만, 새누리당 서 의원과 권 전 지사 등 내부 후보 간 경쟁력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로선 오 전 장관을 비롯한 야권 후보와 박빙 승부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마치 어떤 정답이나 해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는 그저 참고하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맹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혼란스럽다”는 건 여론조사 수치를 통해 예비 후보들에 대한 교통정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또 별로 신통치 않은 방법으로 실시했던 당 자체 조사와 비교해 다른 수치가 나오니까 혼란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조사방법을 무시한 채 그저 수치에만 집착하니까 헷갈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동일 시기 여러 여론조사 수치 다를 수 있다

동일 시기에 비슷한 방법으로 조사하더라도 여론조사 결과는 다를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조사방식의 차이, 표본의 대표성, 낮은 응답률 외에도 조사 시기, 조사기관, 면접원 숙련 여부, 질문방식과 추가 질문 여부, 가중치 부여 등 자료처리방식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런 변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을 경우 지지율 수치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여론조사 선진국에서도 흔한 일이다. 미국에선 동일 날짜에 발표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라도 조금씩 상이한 게 일반적이다. 독일의 경우 수도 이전 관련 여론조사에서 본(Bohn)과 베를린(Berlin)이 각각 우세한 조사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일본의 경우 해외파병과 관련해 서로 다른 조사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는데, 언론사 성향과 질문내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늘 제각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러 언론사의 조사결과 수치가 비슷할 경우 이를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카게이(Kagay)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진실은 하나의 여론조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론조사 사이에 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누가 봐도 상이한 방식으로 실시된 2개 이상의 결과가 왜 비슷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경우다. 왜 서로 상이한 결과가 나왔는지 살피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확한 여론조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오거돈 개인의 경쟁력’과 ‘여권 후보들의 난맥상’이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새누리당 쪽에선 약세 후보에 대한 불출마 선언을 압박하거나 조기 경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각에선 오 전 장관을 당내 경선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야권에선 오 전 장관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은 그저 선거 4개월 전 지지율에 불과하다. 최종 득표율과 무관하다. 여기서 1위라고 최종적으로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꼴찌라고 해서 시장으로 뽑히지 말란 법도 없다. 게다가 서 전 의원이나 권 전 대사가 부산시장에 당선된다고 해서 국제신문이나 부산MBC 여론조사가 정확한 것도 아니고, 오 전 장관이 부산시장으로 뽑힌다고 해서 KBS부산총국 여론조사가 정확한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와 선거 때의 후보 지지율 합이 다른 것도 고려해야 한다. 후보들의 최종 득표율 합은 100%이지만, 여론조사 후보 지지율의 합은 대략 70%(국제신문, 부산MBC) 혹은 80%(KBS부산총국) 내외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공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현재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를 공천한다고 당선이 보장되지 않는다. 단지 그럴 가능성이 다른 후보보다 조금 높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의 민심이 4개월 후에 똑같이 재현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 사이에 정치적 쟁점이 무수히 나올 텐데, 그런 쟁점과 무관하게 후보 지지 여부가 지속될 것으로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4개월 전의 지지율은 물론 선거 1주일 전 여론조사 지지율로 부산시장을 뽑는 게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론조사 관련 직종 종사자로 이런 얘기하기가 그렇지만, 여론조사를 너무 믿어선 곤란하다. 여론조사는 단지 여론조사일 뿐이다. 게다가 모든 수치엔 오차범위가 있다. 가령, KBS부산총국 조사의 경우 (41.9% 대 38.5%, 41.7% 대 39.8%로 오 전 장관이 각각 앞서는 것으로 보도했지만) 앞선 것이 아니다. 서 의원과는 38.8~45.0% 대 35.4~41.6%, 권 전 대사와는 38.6~44.8% 대 36.7~42.9%로 (서로 겹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박빙 접전으로 해석돼야 한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무시하거나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확성 제고를 위한 관심과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전혀 가능하지 않거나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여론조사를 맹신하거나 비판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surv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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