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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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두 여자가 말을 나누고 있다.
갑『칼라스의 노래는 너무너무 아름답더라.』
을『그 여자의 의상도 굉장히 멋있더라.』
두 여자는 나이가 비슷하다. 그러나『너무너무』라는 부사를 쓴 여자는『굉장히』라는 말을 쓴 여자보다 다소 유행에 뒤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요새는『너무너무』보다는 『굉장히』가 더 잘 쓰이는 것이다.
『너무너무』나『굉장히』나 물론『매우』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부사로는 『매우』이외에도『대단히』『몹시』『아주』『꽤』등 많다.
모두 엊그제까지 우리가 즐겨 쓰던 고운 말들이다. 요새는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대단치 않은 것에도『굉장히』라는 말을 즐겨 쓴다.
사람들이 과장을 즐겨서가 아니다. 그만큼 섬세한 감각을 잃은 것이다. 『대단히』와『몹시』와는 뜻은 같다. 그러나 각기 풍기는 뉘앙스는「굉장히」다른 것이다.
그런 말의 뉘앙스를 오늘의 세대는 모르고 산다. 뉘앙스를 가려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마을이 경화된 탓일까.
그 이유야 어떻든, 오늘의 세대는『굉장히』이외의 말을 모른다. 『굉장히』라는 말이『몹시』보다 얼마나 더 조잡한지는 더욱 알지 못한다.
『굉장히』라는 말의 애용이 어느 사이 엔가 우리네 말을 더럽혀가며 있다는 사실을『굉장히』애용 족이 알 까닭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이들도『굉장히』라는 말을 낳게 한 거친 현실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언어는 항상 변해간다. 살아있는 언어란 쉴 사이 없이 다듬어지고 자라고, 변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란 공들여서 가꾸어 나갈 때 아름다워 지고 생명을 갖게된다. 그것은 하루 아침사이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프랑스어가 아름다운 것은 몰리에르 이후 수많은 문학자와 정치가들이 정성스레 가꿔 나갔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은 가물에 마르지 않는다….』이렇게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에서 노래했다.
그러나 아무리 뿌리깊은 나무라해도 죽어 갈 때에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깊은 샘물이라 해도 가뭄이 오래되면 마르게 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한글이 지금부터 꼭 5백28년 전에 창제되었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언어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그토록 훌륭했던 한글이 이제는『굉장히』거칠어졌다. 오늘은 한글날.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언어인가를 뽐낼 때가 아니다. 얼마나 그 훌륭했던 언어가 더럽혀 졌는가를 부끄럽게 여겨야할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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