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해지는 LC 내 도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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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경제환경이 악화되면서 수출전망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모두 예측해온 터라 하겠으나 그에 대한 사전대책의 미비로 수출신용장 내도 액은 예상 밖으로 저조해지고 있다.
지난 5월의 4억3천9백만 달러를 정점으로 해서 계속 감소추세에 있는 신용장 내도 액은 9월 중 2억9천만 달러로 줄어 새로운 대책 없이는 수출증대를 통한 불황극복이나 성장지속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국제수지가 계속 역조 폭을 확대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이라는 정책과제 때문에 외환대책을 소홀히 다루는 정책은 안목의 차원이 매우 낮은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국내 경제문제는 행정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내자가 모자라면 발 권력에 의존할 수 도 있고, 물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가격통제·배급제 등 행정력을 동원해서 일정기간 누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국내 경제문제는 비록 부작용이 크다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국제수지·외환 면에서 모순이 심화하는 경우에는 행정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이 생기게 된다. 만일 국제수지가 근본적으로 악화되면 외환위기가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며, 이 경우 이를 탈출하는 방법은 현금 성 차관확대 및 무역신용 확대밖에는 없다. 따라서 국제환경이 그러한 부채증가를 마음대로 기대할 수 있을 경우에만 심각한 타격 없이 외환상의 애로를 회피할 수가 있다.
만일 국제환경이 각박해서 마음대로 현금 성 대외부채를 늘려 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국내경제는 외환상의 벽 때문에 근본적으로 교란되어 성장을 기대하기보다는 물가와 실업의 악순환만 가중시킬 염려가 큰 것이다.
본 난은 연초부터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은 외환문제에 맞추어서 구성 집행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해온 바이나 그 동안 정책은 오히려 물가문제에 사로잡혀 왔다고 해도 지나친 판단은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신용장 내도 액이 4개월 동안에 근 33%나 줄어도 이를 정책이 조정할 생각조차하지 않고 있는데 외환상의 애로가 이처럼 가중되어 갈 때 국내물가를 안정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관계당국은 깊이 검토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여 국내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국제수지를 희생하는 정책은 일시적인 물가안정을 위해서 본질적인 불안요인을 자초하는 저차원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정책관료들은 사태가 악화되고 나서 정책을 바꿔야만 책임문제를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책전환의 구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로 국민경제의 원활한 환경과 성장을 위해서 경제정책이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정책은 예측을 전제로 해서 사전 조정 책을 집행하는 것이 정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측과 사전조정이라는 경제정책 본연의 자세를 추구하지 않고 일이 터져야 정책을 전환하는 일은 결국 무사안일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처럼 신용장 내도 액이 계속 줄어들어 간다면 불황의 심화에 따른 도산과 실업의 증가는 불가피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수습키 어려운 물가상승 압력에 직면할 것임을 정책은 깊이 인식해서 국제수지조정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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