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적인 세계|조동운(후암 교회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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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거짓된 평화는 불치의 광증에서>
이 시대의 증상은『불치의 광증』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전쟁만 해도 그렇다. 엄청난 젊은이들을 병신으로 만들고 정신병자·불구자·인생 대열에서 탈락된 낙오자를 만들어 놓고,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게「정글」과 들판에 젊은 시체들을 늘어놓고는 이게 기진맥진한 쌍방들은 원수들과 흥정이 맞아서 「화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거짓된 평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제라는 것도 그렇다. 나라마다 경제가 바닥나지 않은 곳이 없다. 세계의 빈곤을 그들만이 걸머진 것 같던 「아랍」인들은 처치할 곳이 없을 이 만큼 세계의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여기 우리의 경제적 단면은 더 설명할 여지없이 어지럽다. 국제질서도 광적이다. 이념이 틀려도 이해관계의 흥정만 맞으면 우방이 되고 그「혈맹」의 우방도 자국의 이권흥정에 거침돌이 되면 헌 신짝처럼 버린다. 이런 걷잡을 수 없는 주변의 광풍은 개인생활에도 무서운 정신적 광기를 가져왔다.
도덕적으로도 그렇다 이제는 숫제 의복을 입지 말자는 것 같다. 배꼽을 내놓는 것은 옛날에는 배부른 부자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요사이는 젊은 아가씨들이 그렇다. 머리는 빗고 가꾸는 때가 지나고 가짜를 뒤집어쓰는 때가 되었다.
남성과 여성의 구별도 없어졌다. 대부분의 옷들이 이제는「남녀공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가정들은 파괴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탈윤리·탈도덕·탈기성 질서를 위해 광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구심점 잃을 때 이웃과도 불화>
「의」와 「법」과「공정」을 지상으로 삼는 사법부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재판소는「정사각형」, 「정방형」의 집을 짓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언론이란 것도 그렇다. 가장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목탁으로 봉사한다던 언론의 세계적 증세는 본래의 그 사명에서 거의 「돌아버린 것」같이 보인다.
대학이 그렇고, 병원도 그렇다. 주변의 광적 풍조는 더 이상 설명할 여지도 없다 한 말로 미친 세계요, 무질서와 무법과 혼란의 세계이다. 엉뚱한 것들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혼란이 새 질서로 허용되고 있다.
이것은 이 세계가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중심을 잃으면 자기를 상실하고 주변의 동조에 휩쓸려 내려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회복하고 굳게 지켜야 한다. 인간의 정상적인 생활은 인생의 본래적인 중심을 향하여 구심적으로 회전하는 구심사상에 근거하는 것이다. 인생이 중심을 잃을 때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을 종합정리하고 조화시킬 중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중심을 잃은 인간은 자기 인생과 사회를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리고 만다. 그 결과는 모두가 같지 않게 되고, 둘이만 만나도 서로 통하지 않게 되 그 한 장의 유리가 깨어지면 산산이 흩어져 하나도 서로 같지 않은 것처럼 되고 만다.

<지상명령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우리의 마음에는 어떠한 흉악한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에 견고한 기둥이 있어야 하겠다 이 기둥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
여러 세기를 걸쳐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심오한 말씀 중의 한 구절이다. 이 귀절의 고귀한 가치를 발견한 많은 위인들처럼 우리도 이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에서 확신과 통찰력을 가지고 그 깊은 뜻을 발견할 때에만 우리의 시대의 모든 광적인 상황이 제 본래의 위치에 돌아가 머무르게 될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이 불안한 「과잉행동」의 시대에 처한 종교인들에게 주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지상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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