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협 관계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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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관계의 긴장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경제 협력 관계에 대한 반성론이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일본의 사양 산업을 들여와 낮은 임금, 싼 토지 비용, 그리고 공해의 감수라는 조건을 살려 우리의 수출 산업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냉각되고 오히려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국제 자본 이동은 냉엄한 계산에 따른 것이므로 이익 없는 곳에 자본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엄밀히 따진다면 문제는 어느 쪽 이익이 더 많으냐 하는 계산 뿐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객관적 계산과 주관적 계산에 「갭」이 있을 경우 잘못된 계산으로 한쪽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며 아무도 그 같은 착각에 동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일간의 경협 관계의 반성을 통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차질이 있었다면 우리측의 계산 부실에 기인되는 바가 없지 않았었다는 사실이다. 종래 우리는 저임금 실태나 공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를 되도록 기피하려 했었고 경협 관계에 따른 여러 부작용 문제도 되도록 이를 덮어두려는 자세를 취해왔다. 또 마치 그들의 자본 도입을 다다익선인 것처럼 착각했던 관계자들도 없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오늘의 한·일 경협 관계에 대한 반성은 애당초 철학과 통찰력이 모자란 채 외국 차관을 들여오려고 했던 우리 관민의 자세에 문제가 컸다는 것을 냉철히 생각해야할 줄로 안다.
지난 연말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한·일 경제 협력의 현황』에 따르면 자본 도입이 고도성장을 추구키 위한 선택이었음을 명시하고, 『한·일 관계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불행했다해서 이에 얽매여 일본을 경제 협력 대상에서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규정했다. 또 기획원은 『경제 협력과 민족 주체성의 확립은 결코 이율 배반적인 양자택일의 관계는 아니며, 이들은 자립 경제 건설이라는 한층 높은 차원으로 융합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의 그러한 공식 태도가 수정되지 않고 있는 한, 대일 경협 문제와 관련해서 야기된 저임금·공해 문재·철저한 상업주의적인 이윤 추구, 그리고 직접 합작 투자에 따르는 제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본 자본의 고리대적 기질이나, 철저한 시장 개척적 투자가 국제적으로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자본을 『자립 경제 건설이라는 한층 높은 차원으로 융합시킨다』는 인식 하에 도입한 것은 바로 우리의 관과 업계이었으므로 이제 한·일 경협의 장래에 대한 호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면 먼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 동안의 경제 협력이 부실한 계산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그에서 파생된 이득의 대부분은 일본측에 귀속된 결과가 될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립 경제 건설이라는 높은 차원으로의 융합이라는 목적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한·일간의 경제 협력이 지난날 어느 쪽에 더 많은 이득을 주었는가를 여기서 굳이 엄격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장차 한·일 양국 국민의 진정한 복지 증진을 위해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정책 당국이 그 동안의 협력 실적을 기준으로서 엄격한 재평가를 해야한다는 것만은 가릴 수 없다.
만일 그러한 재평가의 결과로 우리가 얻은 이득보다 월등 많은 이득을 일본측이 부당하게 거두어 갔을 뿐만 아니라 대일 의존도 때문에 국내 경제 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제약 당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경제협력의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혀 특정 경제에의 예속화 가능성을 극력 배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 분명한 것은 외자 도입이나 경제 협력에서 현명한 계산을 해야하는 의무는 우리측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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