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감독 代行이 '大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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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상의 독일 음악인들 사이에 나도는 농담 하나. 누군가 관현악단 연주자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두 발의 총탄이 있고 앞에는 히틀러와 스탈린과 지휘자가 있다면 누구를 쏘겠느냐." 연주자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두 발 다 지휘자에게 쏜다."

거친 호흡으로 휘몰아치는 경기의 흐름을 음악에, 열광하는 스탠드를 오디토리엄에 빗댄다면 벤치구역에서 포효하는 감독은 영락없이 지휘대 위의 지휘자다. 그리고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준결승은 4개의 악단이 겨루는 '봄날의 교향악 경연대회'다.

그런데 이번 경연대회에 나온 악단은 모두 대타 출신의 지휘자가 이끈다.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LG의 김태환 감독은 국민은행 시절 진가일 감독을, 동양의 김진 감독은 최명룡 감독을, 코리아텐더 이상윤 감독은 진효준 감독을, TG 전창진 감독은 김동욱 감독 대신 지휘대에 올랐다.

대타 출신으로서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이룬 지휘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다. 토스카니니는 로시 오페라단의 리우데자네이루 공연에 첼리스트로 동행했다가 뜻하지 않게 지휘대에 올라 베르디의 '아이다' 전곡을 암보(暗譜)로 지휘, 대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한다.

대타 감독이라고 해서 성공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이번 대타들은 저마다 '대타 만루홈런'을 노리는 듯하다. 2001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에 패한 LG의 김태환 감독은 TG전을 앞두고 '3수는 없다'며 이를 악문다. TG를 1999년 이후 4년 만에 4강에 올린 전창진 감독은 'LG는 쉬운 상대'라며 코웃음이다.

코리아텐더 이상윤 감독이 올시즌 최강으로 꼽히는 동양을 "스타일이 같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자 동양의 김진 감독은 불쾌해 하며 "스타일이 같다고 다 이기나"라고 맞받아친다.

고뇌하는 지휘자와 튜닝에 바쁜 연주자들. 이들의 악보는 작전판이다. 악보 해석이 다르면 음악은 무너진다. 두 발의 총탄을 모두 쏘고 싶을 만큼 애증이 교차하는 게 감독과 선수의 사이일진대 경연대회에 진출한 것 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다. 그러나 대타의 설움이 사무쳤던 만큼 지휘자의 야심은 끝간 데를 모른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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