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소치 간다" 발표 며칠 뒤 중국도 "시진핑 참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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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사진)이 7일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대표단이 입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시 주석은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 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 사진 왼쪽)도 7일 푸틴을 만났다. [소치 AP=뉴시스]

7일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악수조차 나누지 않았다. 예상됐던 일이었다. 두 정상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등 영토 문제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역사인식 문제에서 충돌하고 있다.

 두 정상의 좌석 자체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40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인사 정도는 충분히 나눌 수 있었지만 끝내 눈길조차 주지 않고 헤어졌다.

 두 정상은 중국·일본 선수단의 입장 때도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일본 선수단이 입장합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에 시 주석은 딱딱한 표정으로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앞서 중국·홍콩 선수단의 입장 때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며 격려하고, 대만 선수단의 입장 때 박수를 보낸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는 중국 선수단의 입장 때도 박수를 쳤다.

 시 주석은 일본에 대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 반면, 아베 총리는 계산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야스쿠니 참배 등 도발을 이어가면서도 입으로는 “대화의 문을 닫고 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할 때도 맨 앞자리에서 경청한 아베 총리였다. 중국 선수단 입장에 박수를 치는 것으로 자신의 열린 자세를 다시 한번 어필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 외교도 경쟁적으로 펼쳐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아베 총리의 개회식 참석 보도 며칠 뒤 시 주석의 참석을 발표했다. 정상회담은 시 주석이 6일, 아베 총리가 8일이었다. 시 주석은 중·러 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치르기로 한 약속을 상기시키는 등 일본 포위망 짜기를 시도했다. 반면에 아베 총리는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협상에 속도를 붙이기 위한 신뢰 쌓기에 주력했다.

 일본의 민방 TV아사히는 “당초 아베 총리는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지난해 말 야스쿠니 참배 이후 러시아 내에서 ‘이런 일본과 왜 쿠릴 열도 반환 협상을 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이 확산되자 생각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7일 정오까지 참의원 예산위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응하다가 ‘북방영토의 날’ 행사에 얼굴을 잠깐 비친 뒤 오후 1시에 도쿄를 출발해 개막식 직전에 소치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다. 아베 총리의 이런 행보에 대해 최근 과거사 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탈피와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최근 베트남에서 북한과 접촉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고마운 손님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이 러시아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개회식에 불참했기에 더욱 그랬다.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푸틴으로선 시 주석과 아베 총리 양쪽 모두를 융숭하게 대접했다. 소치를 찾은 정상들 중 시 주석과 가장 먼저 회담을 배정했다. 또 “유럽 국가들에 대한 나치의 침략과 아시아 피해국에 범한 일본 군국주의의 엄중한 죄행이 결코 잊혀선 안 된다”고 입맛에 맞는 발언도 선사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보도된 이 발언은 러시아 주요 언론 보도에선 빠졌다. 마이니치(<6BCE>日)신문은 “아베 총리와 일본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의향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과는 식사를 하지 않았던 푸틴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는 회담 뒤 오찬을 함께했다. 또 2012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에게서 선물받은 일본 아키타(秋田)현의 토종견을 데리고 나와 아베 총리에게 보여주며 친근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이 양국 정상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도하는 데 반해 중국 언론은 철저히 일본을 무시했다. 관영 CC-TV는 8일 밤 겨울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일본 대표단 입장 장면이 중계된 40초 동안 일본의 ‘일’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자국 선수단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아베 총리가 자국 선수단에 손을 흔드는 장면도 방영됐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선수단이 입장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겨울스포츠 현황 등을 소개했다.

베이징·도쿄=최형규·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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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일본 입장 때 박수 안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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