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아베 측근 '다케시마 프로그램' 제작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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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근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는 망언을 쏟아낸 햐쿠타 나오키(百田<5C1A>樹) NHK 경영위원이 독도와 재일 한국인, 야스쿠니(靖國)신사와 도쿄재판 등에 관한 프로그램 제작을 경영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그를 비롯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낙하산으로 밀어 넣은 경영위원들의 망언이 논란을 낳고 있는 가운데 향후 공영방송 NHK의 구체적인 프로그램 제작에도 이들의 우익성향이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경영위원회는 NHK 회장을 선출하고 예산과 주요 사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NHK 홈페이지에 공개된 1월 14일 경영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햐쿠타는 2014년도 국내 방송 프로그램 편성 계획에 대한 논의 도중 마이크를 잡았다. “역사적 과제를 포함해 지금의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에 대해 알리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지 않겠나. 예를 들어 센카쿠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 문제, 또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극동군사재판이나 재일 조선인·한국인에 관한 것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와중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만 가질 뿐 지식을 얻을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방송으로서 일본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나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작가인 그는 3일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우익 후보의 지지유세에서 “일본이 난징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중국이 선전했지만 세계는 무시했다.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는 폭탄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한 인체실험이자 대학살, 도쿄재판은 대학살을 지우기 위한 재판”이라고 말해 파문을 불렀다. 1월 14일 경영위원회 석상에선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만들자는 프로그램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는 자명하게 드러나 있다.

 햐쿠타의 발언 이후 회의에선 ‘경영위원들이 개별적인 방송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게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이번엔 하세가와 미치코(長谷川三千子) 경영위원이 나섰다. 철학자이자 사이타마(埼玉)대 명예교수인 그도 아베와의 친분으로 임명됐다. 20년 전 아사히(朝日)신문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우익단체 회장에 대해 “그의 죽음으로 우리나라의 폐하는 다시 살아 있는 신이 되셨다”며 추모하는 글을 지난해 10월 쓴 것이 최근 드러나 물의를 일으켰다.

 하세가와는 “햐쿠타 위원이 말씀하신 것은 NHK의 큰 사업계획에 있어 중요한 지적”이라며 “NHK의 목표인 공정·공평과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계몽(도 중요하다)”이라고 맞장구 쳤다. 이어 “햐쿠타 위원의 말씀이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해도 목표로는 생각해 달라”고 NHK 임원들에게 요청했다.

 AP통신은 “(회의록의 내용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국수주의적 어젠다를 홍보하기 위해 일본 뉴스업계의 거인(NHK)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뒷받침한다”고 비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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