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지속 가능한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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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직도 일반 국민에게는 생소하지만 'Sustainable Development'가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번역돼 환경 분야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Sustainable Development'는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에서 발간한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유래돼 92년 리우 정상회담과 2002년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진화돼 왔다. 처음 국내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로 통용되다가 언제부턴가 개발이 발전으로 바뀌었다. 사연인즉 개발이라는 단어가 경제성장만을 강조하는 부정적 이미지라 발전으로 쓴다는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에 GM.BASF.도요타 등 세계 초일류기업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 이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이 협의회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제성장과 생태와의 조화, 그리고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경제 성장을 가장 상위 개념으로 친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1만 달러대인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일부 환경지상주의자의 주장에 동조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에서나 적용 가능한 논리를 지금 우리나라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얼마 전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새만금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 등 대형 국책사업들에 대한 반대논리를 보면 진정으로 'Sustainable Development'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세 과시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한 사업이 지연되면 대가는 누가 치르나. 국민의 삶의 질을 위해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며 실컷 목소리를 높여 사업을 지연시켰지만 해당 국가기관 중에서 이들을 상대로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결국 일반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애꿎은 국민에게 경제적 피해만 잔뜩 줘놓고 과연 삶의 질을 높여 준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정부가 추진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국책사업들은 모두 사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부 환경단체는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한 사업에 대해 사전 야합이나 밀실 행정이라고 비난하면서 평가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모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을 위해 설치한 태양광 집광판이 주변의 햇빛을 다 빨아들여서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주민을 선동해 몇 개월씩 공사를 지연시키는 환경단체도 있다고 한다. 정말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후손을 위한 행동이라고 믿으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경제성이 없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여름 한낮에 전기수요가 정점을 이루지만 이 시기에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가 계속되므로 경제성이 없다. 반면 전기가 남아도는 겨울에는 바람이 쌩쌩 불어 발전기가 잘 돌아간다. 풍력발전을 마치 네덜란드 같은 나라의 관광상품 정도로 이해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걸까.

도로.항만.교량 등 사회간접자본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꼭 필요한 전략사업이 대부분이다. 환경지상주의적 보전논리 때문에 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개발사업들을 우리 세대에서 추진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낙오하게 되고 결국 우리 후대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개발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은 새로운 도로.항만.주택 수요가 별로 없다. 그러나 교통혼잡비용이 연간 22조원에 달하고 아직도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이 93.9%인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도로와 주택 건설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도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배부른 선진국들의 'Sustainable Development'를 따라 합창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우길 것인지 곰곰이 되씹어 보아야 할 때다.

후손에게 깨끗한 환경,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남겨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는 개발도 하지 말고 자원도 쓰지 말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