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화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제의 기온 계는 대구36도, 서울 32도를 시현하는 등 최고온도를 기록했다. 당분간 이런 더위의 기승을 보게 되리라는 관상대의 예보다.
그 동안 장마와 위사 장마의 일종으로 사뭇 서늘한 여름이었다. 아마 밀렸던 더위까지도 몰아 통으로 들이닥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추위보다도 더위를 더 견디지 못한다. 체온이 10도 이상 떨어져도 견딜만한 사람들도 체온이 평소보다 5도나 더 오르면 죽기 쉽다.
더위를 견디는 힘은 체력과도 관계가 있다. 같은 더위도 서구인이 우리네보다 더 잘 견딘다. 그만큼 「스태미너」에 차가 있기 때문이다. 생활 조건도 문제가 된다. 어른이 여름에 흘리는 땀의 하루 양은 표준 3㎏가량 된다. 그러나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10㎏씩 흘리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체내의 수분이 소모되면 그만큼 수분의 보급이 없으면 신장의 기능도 나빠지고 열병에 걸리기도 쉽게 된다. 그렇다고 마구 물만 마신다고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체력이 더 약해질 뿐이다, 아무리 더위를 견뎌 낸다 하더라도 능률은 여름 한더위 속에서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아열대지방에 「시에스터」(오수)의 지시문이 있다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GNP가 극히 낮은 「스페인」에서도 고깃간·빵집들도 모두 여름에는 한 달씩 문을 닫고 「바캉스」길에 오른다. 「로마」나 「파리」는 여름에는 완전히 외국인 관광객들 뿐으로 된다.
그러나 아무리 덥다 하더라도 여름은 오래가지 않는다. 벌써 입추도 지난지 며칠이 된다. 낮에는 30도가 넘어도 아침·저녁에는 그래도 피부에 닿는 바람에 찬 맛이 돌고 있다.
또한 더위는 그늘 속에 들어가서 잠시 낮잠이라도 자면 된다. 「에어컨」까지 있는 요새 더위 속에서는 얼마든지 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마음속의 더위다. 『정열에 온 몸을 불태운다』는 표현이 있다. 멋진 말이지만 오늘날 사람들을 불태우는 사회처럼 견디기 힘든 것은 없으리라.
삼계화택이란 말이 있다. 범속의 우리에게는 고민이 떠날 날이 없다.
이런 법부의 세계를 유교에서는 세계·색계·무색계의 셋으로 나눠보고 있다.
무색계란 물질을 초월한 세계를 말한다. 곧 물질적인 욕이 아닌 욕으로 번민하는 미망의 세계다.
이런 삼계에서 헤매는 사람들의 업의 세계는 꼭 불에 타는 집과도 같다. 따라서 삼계화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아무리 더위가 견디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화는 자기에게만 미친다. 그러나 삼계의 번뇌로 자기 몸과 마음을 불태우면 그 화는 남에게까지 미치고 남까지 태워버리고 만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위를 피하러 「바캉스」를 찾는 것 보다 삼계화택을 헤어날 길이 더 요긴한 것만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