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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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닉슨」대통령은 의연 단호하다. 그는 6일 각의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모든 「매스컴」의 예측과 정치적인 정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닉슨」은 그 하루 전인 5일에 「워터게이트」도청을 숨기려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시인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그는 끝내 고집해 온 「이너슨스」(결백)의 성까지도 스스로 헐어 버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이 국민의 동정뿐인 것 같다. 또 하나가 있다면 「조셉·크래프트」(미 시사평론가)의 말마따나 「기적」이 있다. 그러나 기적은 여름날의 소나기와는 다르다. 「닉슨」이 혀를 깨무는 아픔까지도 견디며 자신의 「성」을 허무는 성명을 발표한 심경은 범인이라도 촌도할 수 있을 것 같다.
「닉슨」이 언제나 주장해 마지않는 것은 「프레지던트」가 아닌 「프레지던시」(President)의 권위이다. 「프레지던트」의 권위는 그 장본인의 정치적 수완이나 인격에 따라 손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곧 미국이라는 국가의 인격적 상위이며, 또 「백본」이라는 것이다.
「워터게이트」사건에 의한 비난과 매도와 탄핵은 곧 「대통령」이라는 자연인 아닌 「대통령직」이라는 헌법적 인격체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한다. 「닉슨」이 언필청 『헌법을 고수하겠다』는 뜻은 그런 의도로 하는 얘기다. 바로 그 점에 국민의 동정과 이해를 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른바 「사일런트·머조리티」를 「닉슨」은 믿고 있다. 이 『침묵한 대중』이라는 말은 미국의 68년 선거 때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보수파 정치인들이 진보파의 주장을 상쇄하기 위해 종횡으로 구사한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식인들은 「사일런트·머조리티」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한다. 적어도 월남전·선거, 그리고 「워터게이트」사건에 관한 한 침묵을 지키는 대중은 없다고 단언한다. 「매스컴」의 부단한 논평과 각성된 세론은 벌써 사람들의 침묵을 깨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닉슨」의 보루는 하나도 없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흥미 있는 것은 비집권당인 민주당의 향배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당연히 사임을 지지할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그렇게 단순한 수학은 아니다. 「닉슨」이 탄핵 이전에 「상황」에 못 이겨 물러나는 것을 민주당은 상당히 꺼리는 인상이다.
미국의 2백년 역사상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이 『깨끗지 못한 정치극』에 민주당이 끼여들어 주동적 역할을 했다는 평판을 민주당은 달갑게 생각지 않는다. 언제 그들이 그런 곤경에 놓일지 모른다는 면역적 고려까지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닉슨」이 탄핵심판이라는 운명적 순간까지 버티는 것은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감안한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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