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만원 의원세비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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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의원들은 매달 국고에서 69만7천8백원을 받는다. 이중 18만8천원만 장관급에 준하는 정액수당이고 나머지 50만9천8백원은 입법활동비로 정보비 항목에서 지출된다.
국회사무처는 이 활동비를 내년부터 36만2천원 올려주도록 경제기획원에 예산요구서를 제출했다. 이중 30만원은 순수한 증액이고 6만2천원은 의원비서관직을 부활하면서 줄어들었던 입법활동비를 충당 보전하자는 것.
이 예산요구대로 하면 의원의 세비는 1백5만9천8백원이 된다. 그 위에 급여 18만8천원의 30%인상까지 합하면 1백11만원 선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회 측에선 의원활동비 인상이유로 비서관봉급보전, 자동차세 및 유류가 대폭인상, 물가상승 등을 든다. 순증액분 30만원 중 절반 가량이 자동차 유지비 인상, 나머지 절반이 물가상승에 따른 활동비의 추가분이란 얘기다.
국회의원의 세비는 8대 국회인 71년에 31만4천원, 72년에 33만5천원, 9대 국회에 들어와 작년에 75만원, 올해에는 69만7천8백원이 됐다.
8대에 비해 기능이 약해진 9대 국회에서 세비가 계산상 대폭 늘어난 듯 하지만 사실 별로 큰 차리는 없다. 8대 때 바로 비서 3명과 운전사에게 주던 월급과 의원에게 제공하던 사무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금년부터 매달 6만2천원씩 받는 비서관 1명이 부활했으므로 작년과 금년은 전혀 차이가 없는 셈. 이 밖에 1년에 6개월 개화로 상정, 약간의 회의비가 국회예산에 계상돼 있다. 그러나 액수가 적어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씀씀이가 엄청난 지역구의원>
국회의원이 받는 69만7천8백원은 일반 공무원이나 월급장이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활동반경과 씀씀이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게 거의 모든 의원들의 푸념.
지역구 출신의원들이 특히 그렇다. 여야의 중진의원을 제외하고도 지역구의원들은 매달 70만원에서 1백2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초선의원인 공화당 A의원의 경우 돈을 아껴 쓰는데도 매달 90만원을 지출해야한다는 계산이다.
A의원의 지출명세는 ▲지구당관리비 20만원(①추가인건비 8만원 ②경조비 5만원 ③통신료5만원 ④사무실관리비 2만원) ▲차량유지비 30만원(①운전사월급 및 식대 8만원 ②세금 및 유류·보수비 22만원) ▲사무실유지비 10만원 ▲생활비 15만원 ▲활동비 15만원 등이다.
신민당 초선의원인 B의원은 비교적 알뜰하다는 얘길 듣는데도 ▲지구당 관리비 10만원 ▲차량관리비 25만원 ▲활동비 15만원 ▲경조비 5만원 ▲생활비 15만원 등 최소 70만원이 든다고 한다.
다선 의원이 되면 차차 쓸데가 많아진다. 재선의원인 공화당의 C의원은 ▲지구당관리비 20만원 ▲차량관리비 35만원 ▲사무실 및 전화비 15만원 ▲비서관추가인건비 10만원 ▲상경객 치닥거리 10만원 ▲활동비 20만원 등 생활비를 제외하고도 1백 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유정회 의원 중에도 정치를 하지 않던 의원들은 될수록 세비 안에서 지출한다. 그러나 그들도 국회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하게되면 씀씀이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교수시절에는 1천원이면 되던 경조비가 지금은 곤란하다든지 친구를 만나더라도 대접을 해야하고 한두 학생 장학금도 보태야 체면이 서게되는 것이다. 수유리에 사는 K의원은 자동차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일을 모아 가급적 한 주에 한두번으로 외출을 억제한다고도 했다.

<지역·비지역의 차등제 주장도>
의원, 특히 지역구의원들의 수지역조가 막한 실정이긴 하지만 세비가 한달에 1백 만원이 넘는다면 엄청난 금액이다.
특히 반년이 넘도록 문 한번 열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세비만 올리려한다는 것은 의원 스스로도 떳떳치 못했던 모양이다.
예산요구서 작성과정에서 국회간부들은 모두 세비인상필요엔 동조했으나 방법에 이견이 있었다. 김진만 부의장 등은 세비인상을 예산요구에 반영하면 사전에 누설이 돼 시끄러울 것을 염려해 나중 국회심의과정에서 정부와 조용히 부결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그러나 운영위에서 야당의원들이 앞장서 세비를 올리려면 정정당당히 예산요구를 해야한다고 주장, 이 방법이 채택됐다는 것.
막상 예산요구과정에서 세비 인상문제가 물의를 일으키자 조용한 부결을 주장했던 의원들은『방법이 나빴다』고 예산 요구파를 공격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야의원들은 체면은 안서는 얘기란 전제를 하면서도 인상필요성을 역설한다. 다만 몇몇 의원은 1백 만원이 넘는다면 여론이 두려우니 비서관봉급보전과 차량유지비 보충정도의 소폭인상안을 제시하기도하고 어떤 의원은 지역구 및 비지역구 의원간의 차등활동비를 주장하기도 했다.
71년에 비해 국회예산은 지난 3년 동안 불과 56%신장했으나 해산됐던 국회가 재구성된 작년에 비해선 금년엔 1백78%가 늘었다. 이렇게 예산이 늘 때 다만 조금이라도 세비를 늘려 놓을 것을 한꺼번에 올리려니 더 눈치가 보인다는 의원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 기능은 변했는데 의원들이 지출해야할 구실은 그대로 온존한다는 정치 행태가 문제인 것 같다.
또 다른 공무원은 생활급도 안 되는 판에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쓸 만큼 써야겠다는 사고도 문제다.『하는 일이 적으면 적은 만큼 문을 못 열면 못 여는 만큼 씀씀이도 줄여야 할까보다』는 몇몇 의원의 푸념이야말로 바로 세비인상에 대한 의원들의 고민인 듯 하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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