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5년만에 바뀐「한글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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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70년 한글 전용이 결정, 발표되었을 때 나는 정부의 용단에 박수를 보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써온 한자를 버리고 우리 한글만 쓴다는 것은 현실적인 면에서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감행한 정부에 박수를 보낸 이유는 정부가 민족문화의 주체성을 찾았다는 기쁨에서였다.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글을 우리문화의 토대로 한다는 것은 민족적 입장에서 볼 때 누구나 반대할 수 없는 문화원칙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글전용이 실시된 뒤에도 나는 옛날의 우리문화유산이 거의 한자로 되어있는데 그 문화적 전통을 어떻게 이어받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다행히 한글 전용과 아울러 정부에서는 한자로 된 고전서적들을 대량으로 번역 출판했기 때문에 나는 유산계승문제도 해결되었다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런데 5년도 못되어 지금 한글전용이 폐기되고 다시 중·고교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한다고 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한문 실력이 몇 해전 대학생들보다도 훨씬 떨어져 있음을 안다.
이게 그 한자 모르는 학생들은 무식한 학생으로 취급을 받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자 공부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 아니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4, 5년 동안 한자를 배우지 못해서 지금 무식장이로 취급받아야 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나는 어떤 대학원 학생의 글에서 화근을 화근이라고 썼음을 보았다. 이것도 무식에 속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국민을 무식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기를 하지 않고 한자만을 써서라도 한자를 철저하게 가르쳐 국민들이 반무식장이 내지 무식장이가 되지 않게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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