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바다 폭음속 깨어진 만선의 꿈|북양어선 해금강호 충돌 상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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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박동순 특파원】 만선의 꿈은 출어 사흘만에 어이없는 비극으로 끝났다. 칠흑의 바다를 뒤흔든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변을 당한 선원들에게는 구명「보트」를 내릴 틈도 없었다. 놀라 깬 선원들은 바다 가운데로 내동댕이쳐졌고 선실에서 잠들었던 선원들은 깨기도 전에 물 속에 잠기는 등 한밤의 바다는 처참한 물결만 출렁이었다.

<사고경위>
해금강호는 북양의 「베링」해협을 향해 시속 5∼6「노트」로 항해 중이었다. 당시 해상에는 초속 5m의 북북서풍이 불고 파도는 잔잔했으나 시계 40m의 짙은 안개 때문에 「레이더」감시를 해야했다.
3등 항해사 이영수씨(29)는 29일 하오10시 조금 지나 「레이더·스크린」을 통해 전방 약15㎞해상에 제3진황환이 접근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2분 간격으로 무중신호를 울렸으나 진황환은 이를 무시, 빠른 속도로 접근해왔다. 불길한 예감이든 이씨가 선실로 달려가 잠들어있는 선장 안씨를 깨워 함께 갑판으로 나오는 순간, 『쾅』하는 폭음이 울리며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와 함께 전등이 모두 나가고 피난 지시「마이크」도 쓸 수 없게 됐다.
갑판에 있던 10여명의 선원들이 『사고다』고 소리치며 선실에 잠들어있는 선원들을 깨우기 위해 약2분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어창에 장치된 냉동실 쪽에서 「암모니아·가스」가 폭발했다.
「가스」폭발과 함께 대부분의 선원들은 바다로 내동댕이쳐지고 배는 선미부터 물 속에 잠기기 시작, 5분만에 침몰했다.
사고직후 3등 항해사 이씨와 2등 항해사 임명규씨는 고무「보트」를 내리려고 손질하던 중 「보트」와 함께 바다로 내동댕이쳐졌다.
바다에 뛰어 내린 선원들은 부서진 배 조각을 잡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선장 안씨는 배가 침몰될 때까지 대피를 지휘하다 맨 마지막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으나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구조작업>
사고직후 출동한 일본 순시선 대양환 등 5척과 「비치·크라프트」 1대가 사고현장 북동 20해리,
남북 23해리에 걸친 장방형해역을 수색했으나 짙은 안개로 작업이 늦어져 1일 상오까지 구명「보트」 1척과 부서진 배 조각들을 발견했을 뿐 실종선원은 한사람도 찾지 못했다.
사고현장의 바다온도는 섭씨5도로 바다에 빠진 선원들은 1시간이상 생존할 수 없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구조된 선원들은 대양환에 옮겨 타고 30일 하오6시 「구시로」항으로 귀항, 선원 숙박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일부선원들은 타박상을 입었을 뿐 대부분 건강한 상태이다. 3명의 사망자는 입관되어 정광사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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