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물가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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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상승률이 근자 둔화되는 한편, 생산과 출하사이에 「갭」이 생겨 재고가 현저히 늘어가고 있다. 재고축적에 따라서 업계의 자금사정은 계속 악화하고 있으며, 때문에 섬유·합판 등 업계에는 이미 재고금융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의 재고동향이 반전되지 않는 한 앞으로 재고금융은 더욱 확대되어야할 것이나, 그것이 민간구매력으로 반영되지는 못하는 성질의 금융이기 때문에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재고금융의 확대는 다른 한편으로 국내여신한도를 잠식하기 때문에 내수산업·중소기업의 운전자금회전에 압박을 줌으로써 경기를 더욱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경기국면에 커다란 압박을 주는 금융상의 애로는 신용창조의 주요창구로서 기능 하던 외환부문이 국제수지역조 폭의 확대로 반전, 통화환수작용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연초이래 물가상승률이 30%선에 이룸으로써 거래수요는 그만큼 증가했는데도 통화량은 거꾸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수요수준을 억압하는 정도 금융핍박의 한 원인을 이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물가상승률과 금리 수준이 조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자금 환류 기능이 막혀 통화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서는 여신을 증가시킬 수 없는 경직상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금융상의 애로는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융사정이 핍박함으로써 경기동향이 침체상을 심화시킨다 하더라도, 하반기에 방출할 각종 정책자금을 고려할 때, 통화관리를 방만하게 한다면 초과수요 때문에 다시 물가를 자극할 염려가 있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금융을 풀기도 힘든 형편이라는데 정책의 고충이 있다.
하반기에 주로 방출되는 하곡 및 추곡수매자금·농사자금은 물론, 상반기에 억제된 정부사업의 집중 발주 등 현상은 급속한 통화량증가를 수반하는 것이나 지금의 금리체계 하에서는 그것이 저축성예금으로 환수되어 중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하반기물가대책은 경제정책의 차원을 바꾸지 않는 한, 현상유지이상의 것을 시도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즉 금리·환율 등 순경「메커니즘」을 변경시키는 정책을 선택한다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하반기물가대책은 대증요법 적인 것에 국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정업계가 대금압박을 받으면 구제금융을 하되 총수요는 정책자금방출 도에 따라서 적절히 조절한다는 선 이상의 정책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획원이 하반기물가대책으로서 총수요억제·건축규제·정부비축물자방출·책임생산 제 등 종전의 물가대책을 그대로 원용하려 하는 것도 현재의 정책차원을 전제로 하는 한,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의 동향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국민경제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정책판단이 앞서야만 각종 정책변수를 조정해서 소망스러운 경제동향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을 상기할 때 정책변수의 조정을 전제로 하지 앉는 하반기물가대책은 너무나 평면적인 정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하반기경기전망과 그에 대응하는 종합대책의 하나로서 하반기물가대책이 집행되어야 하겠다는 뜻에서 하반기물가대책에 앞서 하반기 종합대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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