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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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드디어 막을 올린 「월드·컵」 축구대회에 온 세계가 들떠 있다. 들뜰만도 할 것이다. 축구경기가 이제는 거대한 국제산업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최비·시설비·광고료·방송 중계료, 또는 승부 알아맞히기 도박금 등에 수천만「달러」나 동원되고 있다. 60억 원의 보험금까지 걸고 있는 축구「팀」도 있다.
운동경기란 관중을 광기로 몰아넣는 수가 많다. 그런데에 또 「스포츠」의 맛이 있다.
「브루클린·다저즈」때의 얘기이다. 야구 경기 중 어느 「자이언츠」 「팬」이 「다저즈」의 흉을 보았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다저즈」 「팬」이 그를 사살하였다. 사형집행의 날이 오자, 그 살인범은 간수에게 『오늘 경기에선 「다저즈」가 「자이언츠」를 꺾었겠지』라고 물었다 한다.
그러나 야구광보다 더 무서운 게 축구광들이다. 열혈적인 남미사람들은 축구경기가 있을 때마다 상해보험에 들기까지 한다. 64년「페루」의 「리마」에서 「아르헨티나」대 「페루」의 경기가 있을 때였다. 「페루」의 득점을 인정하지 않은 심판에 불만을 품고 「페루」 관중들이 「필드」안에 난입하여 경관대와 충돌했었다. 난동은 경기장 밖으로까지 확대되었다. 3시간 후에 겨우 난동이 진압되었을 때에는 사자가 3백 50명이나 되었다.
66년의 「월드·컵」경기 때 「브라질」이 「포르투갈」에 지자 「브라질」 국내는 벌컥 뒤집혔다. 「브라질」안에 살던 1백만 명의 「포르투갈」인들은 며칠동안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 가장 진묘한 사건은 69년에 일어났다. 이때 「온두라스·팀」쪽 「팬」들과 「엘살바도르·팀」의 「팬」들이 충돌하자 양국은 즉각 국교를 단절하고 군대끼리 교전까지 했다. 다행히 이 「축구전쟁」은 수일 후에 끝났지만 그사이 사자는 이미 2천명을 넘었다.
축구란 묘하게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뭣인가를 가지고 있다. 평소에 냉정하다는 영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엘리자베드」시대의 어느 작가는 축구가 『야만적인 놀이이며 원한·질투·악의, 그리고 때로는 살인까지도 도발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에서도 툭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스포츠맨쉽」이란 말도 18세기에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축구경기 도중에 터진 난동을 가라앉히려고 어느 귀족이 즉흥적으로 꾸며낸 말이다.,
축구에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은 경기 그 자체보다도 경기장안의 분위기에 도취되는 까닭이 더 많다.
군중심리는 개인을 잊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자제며, 이성까지도 완전히 잊게 만들어놓는다.
또한 일상생활의 모든 걱정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준다.
이런데 경기의 마력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마력에 도취되고 싶은 생각에서 사람들은 경기장엘 간다.
더욱이 「월드·컵」축구에는 나라의 명예까지도 걸려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마저 이렇게 들뜨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아무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결코 좋은 일이라 하기 어려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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