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미국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 강대국의 권력과 욕망 때문에 희생당하는 무고한 사람들, 그들의 슬픔과 분노가 내 작품의 주제다."
초읽기에 들어간 이라크전을 의식해서인지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52.사진)는 전쟁에 대한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에 온 비올라는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가 이미 겪었던 전쟁의 비극을 이제서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과 베를린 구겐하임에서 열린 그의 작품전이 특히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까닭도 테러와 전쟁이란 낯선 풍경을 만나 불안에 휩싸인 이 초강대국 국민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비올라는 탄생과 죽음, 고뇌와 슬픔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근원적인 문제들을 비디오 매체에 녹여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인 '가리기'를 빼고는 모두 지난해에 제작한 작품 8점을 전시장에 설치한 그는 '최후의 천사' 앞에서 "지금 이 시대에는 더 많은 천사가 필요하다"며 눈을 찡긋 했다.
여러 대의 고화질 카메라로 찍은 사람들을 느린 속도로 흘러가게 만든 '침묵의 바다''여정' '관조' 등 그의 작품들은 슬픔과 고통에 잠긴 사람들이 드러내는 견딤의 순간을 격렬하게 잡아낸다.
시간을 늦춰가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얼굴들, 기억에 잠긴 표정은 21세기의 종교화처럼 연민에 잠겨 애절한 인간의 영혼을 비춘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