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 8개월 서울국제중재센터, 첨단 장비로 변론 실시간 제공 … 외국 의뢰인들 깊은 신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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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린동 서울국제중재센터(SIDRC) 심리실은 한국의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PC와 화상회의 시스템, 터치패드 등을 갖췄다.

‘서울을 동아시아 국제중재의 허브로 만든다’는 기치 아래 설립된 서울국제중재센터(SIDRC)가 27일로 개소 8개월을 맞았다. 지난 8개월간 센터가 유치한 국제중재 심리는 3건이다. 각종 법률 세미나와 로스쿨생 모의투자중재, 대한상사중재원(KCAB)의 중재 CEO아카데미,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간담회 등 14차례의 국제중재 관련 행사도 치러냈다. 이는 기대했던 만큼의 사업 실적은 아니지만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세계적인 영국 로펌 DLA PIPER의 파트너 변호사, 일본중재인협회(JAA) 임원진, 홍콩 법무장관과 홍콩사무변호사회 앰브로즈 램 회장 등이 끊임없이 센터를 찾아 첨단 시설을 둘러보고 가는 이유다.

 김갑유(51) 사무총장(법무법인 태평양 국제중재팀장)은 “국제중재 사건은 양측 당사자가 사전에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키로 계약을 해도 실제 사건화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른바 ‘회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성우(49) 홍보위원장(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장)도 “첫 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며 "시설이 세계적 수준인 만큼 중장기 계획을 갖고 사업을 착실히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서울글로벌센터빌딩 11층에 위치한 서울국제중재센터. 대한변협이 지난해 110대 1의 경쟁률 끝에 특채해 센터로 파견한 기미진(34·여·사진) 변호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 변호사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4년간 일하다 로스쿨 1기 졸업생이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지난해 개소 때 화상회의시스템부터 인테리어와 관련된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야 했던 그는 변호사로서 이사회 운영 준비와 경영 문제 처리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홍콩 법무장관 일행 7명이 방문했을 때는 센터를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도 맡았다. 특히 가장 핵심 사업인 중재 심리를 위한 대형심리실 대관 때는 참석자 명단 관리, 스케줄 조정, 배정할 방 결정 등 구체적인 사안을 꼼꼼히 챙긴다.

 기 변호사는 “센터 개소식을 하고 보름쯤 지났을 때 첫 중재 심리가 열렸다”며 “그 때는 새 물품에서 나는 냄새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6월 10일부터 사흘간 열린 국내 대기업과 독일의 다국적 제약회사 간의 분쟁이다.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법원에 2012년 초 접수된 사건인데 중재 장소를 서울로 정했던 것이다. 당시 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이 국내 기업을 대리했고 상대방은 베이커앤맥킨지(Baker & Mckenzie)가 맡았다. 3명인 중재재판부의 면면도 화려했다. 의장 중재인은 벨기에 출신의 버나드 하너쵸우가, 중재인은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의장인 호주 출신 마이클 프라일스와 독일 출신 스테판 뤼첼이었다. 심리는 매끄럽게 진행돼 당초 4일 예정이었던 게 3일 만에 끝났다. 화상회의를 위한 HD 스크린, 스마트 PC, 태블릿 PC 등 첨단 장비 덕분이었다. 속기사들은 모든 변론 내용을 실시간으로 적어 태블릿 PC를 통해 제공했다. 기 변호사는 “베이커앤맥킨지 측 여성 변호사가 독일로 돌아간 뒤 편지와 선물을 보내왔다”며 “또 의장 중재인은 ‘글로벌 아비트레이션 리뷰(GAR)’라는 저명 잡지에 ‘서울에서의 중재가 아주 좋았다’는 글도 올렸다”고 소개했다. 같은 해 11월 20~22일 진행된 두 번째 중재심리 역시 ICC 접수 사건이었다. 외국계 회사가 투자한 자회사가 한국인 개인 주주들과 체결한 주주 간 계약서상의 ‘언아웃(earn-out·투자 차액이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수익을 나누기로 계약하는 차후정산방식) 페이먼트’ 관련 분쟁이었다. 기 변호사는 “당시 양측 변호사들이 원하는 대로 증거자료 파일 업로드를 잘 해드렸더니 ‘다음 심리도 여기서 하겠다’고 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세 번째 중재심리는 대한상사중재원에 접수된 국내 기업과 외국 해운기업간 분쟁이었다.

  ◆개소 때부터 무료 봉사=신영무 이사장, 신희택 운영위원장, 김갑유 사무총장 등 12명의 이사진을 포함한 운영위원 24명은 개소 때부터 무보수 자원 봉사 형태로 일한다. 일종의 프로보노 활동이다. 이는 센터가 민간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의 주도로 ‘공익사단법인’으로 출범한 것과 무관치 않다. 법무부, 대한상사중재원, 서울시 등의 컨소시엄 형태다. 김갑유 사무총장은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중재(Arbitration)=분쟁 당사자의 합의로 법원 소송이 아닌 제3자(중재인 또는 중재기관)에게 분쟁의 해결을 맡기는 제도. 국제중재의 경우 중재인과 사용 언어, 시간, 장소 등은 상호 합의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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