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질병 연관 없다" … "증명할 빅데이터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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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소송’을 놓고 건강보험공단과 담배업계의 전초전이 시작됐다. 그동안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던 담배업계가 27일 포문을 열면서다. 건보공단이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사회에서 소송 방침을 확정한 지 나흘 만이다. 이날 한국담배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담배소송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담배협회 “어느 나라서도 승소한 적 없어”

 담배협회는 우선 담배소송이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날을 세웠다. 김병철 협회장은 “국내 개인이 제기한 네 차례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며 “개인 한 명을 대상으로도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 규명이 안 되는 만큼 공단의 소송은 당연히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담배는 제조상 하자나 불법 행위가 없다”며 “법원은 흡연소송 네 건 모두 담배회사의 위법 행위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개인의 한계’를 넘을 비책(<7955>策)이 있다고 자신한다. 우선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다.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안선영 변호사는 “공단은 다년간의 검진·진료내용 자료를 토대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며 “장기간 추적 연구 결과로서 충분히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담배회사 위법 행위 여부에 대해선 “담배회사 퇴직 내부고발자들이 꾸준히 연락해 오고 있다”며 “담배 제조공정의 위법 행위에 대해 다퉈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유사소송의 해외사례를 두고도 양측의 의견은 엇갈린다. 담배협회는 “어느 나라에서도 담배회사를 상대로 승소한 사례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번 담배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없다는 유력한 근거다. 하지만 건보공단의 생각은 다르다. 건보공단 안 변호사는 “1998년 미국에서 46개 주(州)정부가 소송을 제기해서 2060억 달러(약 220조원)의 역대 최고액의 배상 합의가 이뤄졌다”며 “이런 사례가 수없이 많은데 승소 사례가 없다고만 주장하면 답답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담배협회는 ‘정부 공동책임론’도 들고 나왔다. 담배 유해성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담배협회 김 회장은 “담배사업이 민영화된 2002년 전까지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담배사업을 소유하고 운영했다”며 “실제로 개인 소송만 봐도 정부가 항상 공동피고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어디까지나 소송 대상은 담배회사”라며 “정부 책임은 담배회사가 법정에서 제기해서 다툴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건보공단 “장기간 추적 연구, 설득 가능”

 이번 담배소송은 3월 중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은 현재 소송액을 결정하고 변호인단을 꾸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게 마무리되는 게 3월쯤이 될 것이라는 게 내부의 전망이다. 국내에서 개인이 제기한 네 건의 담배소송 중 한 건은 1심 패소 후 종결됐다. 나머지는 1심 또는 1, 2심에서 패소해 고등법원(1건)과 대법원에 계류(2건) 중이다. 다만 1999년 두 번째 소송 2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소세포 폐암과 편평세포 후두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은 이 두 질병을 기준으로 소송액을 결정할 계획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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