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시장 '2 대 8 가르마' 구도 깨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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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둘 다 ‘최대’를 자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0∼15㎝밖에 안 되는 막대모양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제품으로 똑같이 체면을 구겼다.

 세계 최대 커피 회사인 스위스 네슬레와 국내 최대 유통망을 자랑하는 롯데 얘기다. 막대모양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제품은 ‘커피믹스’다. 네슬레와 롯데가 1조3000억원 규모의 커피믹스 시장에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손을 붙잡았다. 롯데그룹의 종합식품회사인 롯데푸드는 27일 한국네슬레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50%(500억원)를 취득하고 합작사인 ‘롯데네슬레코리아 주식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충북 청주에 생산공장까지 갖고 있는 네슬레 입장에서는 마케팅과 유통이 아쉬운 상태였고, 롯데로선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던 참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더 다급한 쪽은 네슬레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네슬레는 1987년 커피 수입 규제 철폐를 계기로 89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국내 시장은 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만들어낸 동서식품이 ‘맥심’ 브랜드를 앞세워 석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네슬레는 ‘테이스터스 초이스’ 상표로 단숨에 시장점유율을 20%대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네슬레의 입지가 흔들렸다. 시장 점유율이 2007년 16.8%에서 줄곧 하락하더니 지난해에는 3.7%까지로 곤두박질쳤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네슬레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 마케팅은 활발하지만 한국적 정서에 맞는 마케팅과 유통망 확보에서 뒤처졌다”며 “그사이 국내 소비자들이 기존 브랜드나 국내 업체들이 새로 내놓는 브랜드에 익숙해지고 로열티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래엠 토프트 한국네슬레 대표는 “네스카페라는 글로벌 브랜드의 강점과 롯데의 유통·마케팅 노하우의 결합은 성장을 위한 튼튼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롯데로서도 네슬레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롯데는 2010년 7월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칸타타’ 브랜드로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했지만 고전 중이다. 지난해 점유율이 1.4%로 캔커피·병커피 등에서 50% 정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 때문에 최근 커피믹스 시장 철수설이 나돌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아예 네슬레 제품과 브랜드를 통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결정된 게 없다”며 “새 합작사가 설립된 이후에 브랜드와 유통 전략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던 롯데로서는 청주 공장을 통해 커피믹스의 품질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이영호 롯데푸드 대표는 “이번 협력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품질의 커피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 1, 2위를 달리고 있는 동서식품(81.2%)과 남양유업(12.6%)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동서식품은 주력 제품인 ‘맥심’ 브랜드에 고급 아라비카 원두 사용 비율을 기존 60%에서 80%로 높여 철저하게 맛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을 세웠다. 미세한 원두 입자로 최단 시간 저온 추출하는 APEX(Advanced Prime Extraction) 공법도 새로 적용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말 출시한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누보’에 전력을 쏟고 있다. 마케팅 비용도 기존 프렌치카페보다 10% 정도 높게 책정하는 등 공을 들여 점유율을 올해 30% 선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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