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싸고 강대국 입김… 「쿠르드」족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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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치권 획득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구한말 이준 열사가 밀파되어 독립을 호소했던 바로 「헤이그」만국 평화 회의에 역시 민족 대표를 보냈던 중동의 소수 민족이다.
「터키」에 4백만, 북동「시리아」와 북서「이란」에 3백만, 「이라크」북부에 2백만, 소련 「아르미니아」에 25만명 등 5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종교의 「아랍」족과 같은 회교지만 「인도·유럽」족의 한 분파로 「이란」방언을 사용, 인종과 언어가 「아람」족과 다르다.
「쿠르드」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은 멀리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51년 애족시인 「바이야지드」의 열렬한 호소에 호응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독립 투쟁은 그 동안 「터키」에서 2회 「이란」 1회, 「이라크」에서 6회나 줄기차게 전개됐지만 역사상 한번도 완전한 독립 국가를 세워 보지 못한 비련의 민족이다.
1897년 「쿠르디스탄」이란 첫 민족지를 발간하기로 한 「쿠르드」족은 1차대전 이후 「터키」의 패망으로 국제연맹에 의해 독립의 기회가 있었으나 「터키」에 「아타루르크」군사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무산됐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군의 도움으로 소군이 점령한 북부에 「쿠르디스탄」국을 세웠으나 소군의 철수와 「이란」의 공격으로 6개월만에 독립국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치열하게 독립 투쟁을 해 온 곳은 「이라크」. 61년, 70년 등 여러 차례 자치권을 요구하는 반란을 일으켜 「이라크」정부는 74년3월11일까지 자치 법을 마련키로 약속, 4년간 휴전 상태에 있다가 만족할 만한 응답이 없자 다시 총을 잡게 된 것이다.
「이라크」정부는 약속 시한인 3월 11일 언어·교육 등에 관한 자치 입법을 발표했으나 「키르쿠크」유전 지대가 자치구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키르쿠크」지방은 「쿠르드」족이 대대로 살아온 본거지이기 때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 석유의 소유권을 장악하여 독립으로 향한 돈줄이 포함되지 않은 자치구는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쿠르드」의 주장.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은 반군에 군수품을 공급한 것으로 보도되었고 소련은 「그레치코」국방상을 지난달 24일 「바그다드」에 급파했다.
「쿠르드」족의 반란은 이처럼 강대국들의 입김까지 곁들여 있어 유태인 때문에 2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동 사회를 불안케 하는 또 하나의 인종 분규로 등장하고 있다.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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