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광호 한국삼공 명예회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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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70년대 국내 최초로 작물보호제 원료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영국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세우는 데 기여한 한광호(사진) 한국삼공㈜ 명예회장 겸 한빛문화재단 이사장이 23일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월남 1세대 대표 기업인이다.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광복 직후 중국 하얼빈에서 홀로 귀국했다. 63년 한양대 화공학과를 졸업했다. 68년 작물보호제 제조회사인 한국삼공㈜을 세웠다. 보릿고개로 배곯는 이들이 길거리에 넘쳐났고, 최우선 국책과제는 ‘식량 증산’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작물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작물보호제는 원료를 100% 외국에서 수입해 제조했다. 그래서 가격도 비쌌다. 79년 일본 일산화학공업과의 합작회사인 서한화학㈜을 새로 설립해 작물보호제 원료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공적을 인정받아 85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64년엔 백수의약㈜과 합작회사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을 설립했다.

 고인은 기업이 문화·예술사업을 지원하는 메세나 활동으로도 족적을 남겼다. 92년에는 재단법인 한빛문화재단을 만들어 40여 년간 모은 동아시아 문화재를 모두 기증했다. 이를 기반으로 99년에는 동아시아 문화재 전문 박물관인 ‘화정 박물관’을 설립했다. 화정(和庭)은 한 명예회장의 아호다. 98년, 대영박물관이 한국관을 설립하는 데 사재 100만 파운드(현재 환율 기준으로 17억8000만원)를 기부했다. 한국관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유물도 함께 전시돼 있다. 이듬해 문화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당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방한해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장남 한태원 한국삼공 대표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국내 농업 발전을 위한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생전 농업에 열정을 다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화정 농업상’(가칭)도 만들어 ‘한국농업 노벨상’으로 키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하순(79)씨와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포천시 내촌면 광릉추모공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02-3410-6917.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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