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베 총리, 진정성 있는 행동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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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박근혜 대통령 기조연설 행사에 방청객으로 나타났다. 25분에 걸친 박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5m 앞에서 지켜보면서 박수도 치곤 했지만 두 정상 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로 동선이 달랐다고 한다. 대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베 총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전날 ‘한국의 밤’ 행사에는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기술하도록 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우파 정치인이다.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데 일조한 두 장본인의 등장에 적잖은 관계자들이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아베 총리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면 정상회담을 갖자는 메시지로 보인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전제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갖자고 해왔다. 그러나 이번 움직임에서 진정성을 찾기 힘들다. 현재의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가 그런 제스처만으로 개선의 실마리를 잡기 힘들다는 것은 일본이 더 잘 알 것이다. 아베의 행동이 우리보다 국제사회를 겨냥한 이미지 외교로 보이는 이유다.

 첫째는 미국이다.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안 되는 것은 한국 때문이라는 인상을 심으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아베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박 대통령에게 적극 접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당시 상황은 한·일 관계 악화가 일본 때문이라는 미국의 기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베는 지금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궁지에 몰려 있다. 둘째는 중국이다.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을 비롯해 한국과 대일 과거사 공조 움직임을 보이자 한국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런 의도라면 한국민의 마음을 사기는커녕 역효과만 부를 뿐이다.

 아베 총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올바른 역사 인식이다. 군 위안부를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제 침략을 반성·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은 그 첫 단추다. 일제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고, 그 역풍을 외교적 연출로 피해가려 한다면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