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굴뚝'만으론 경제대국 못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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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송기홍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우리나라의 국제수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매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개편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새로운 국제수지매뉴얼(BPM6)에 맞추어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2012년 500억 달러 흑자를 달성했고, 지난 10년간 누적 국제수지 흑자 규모도 2000억 달러에 달한다. 꾸준한 국제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외환위기 당시 200억 달러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3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가히 놀라운 업적이다.

 국제수지 흑자에 가장 큰 기여를 한 효자 항목은 상품 수출과 수입의 차이인 상품수지이다. 상품 수출은 2003년 이후 세계경제 불황에도 연평균 11%씩 증가하며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상품수지와는 반대로 서비스수지는 2000년 이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적자구조 고착화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서비스수지는 운송·여행·건설·보험·금융·통신·지적재산권과 유지보수, 가공서비스, 사업서비스, 정부서비스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여행·지적재산권·사업서비스 수지에서 큰 적자를 내고 있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수지 적자 고착화는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핵심 기술이 미약한 상황에서 제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발 빠른 모방 전략을 통해 단기간에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펼쳤다. 따라서 지적재산권과 사업서비스 수지 적자가 불가피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지급한 지적재산권 사용료는 2002년 17억 달러에서 2012년에는 60억 달러로 증가했다. 또 가계 소득이 늘어나면서 국민의 해외 문화 소비, 유학, 해외여행 욕구 분출로 여행수지 적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활성화된 2006~2007년에는 여행수지 적자 규모가 상품수지 흑자의 절반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1년 내내 만들고 수출해서 번 돈의 반을 해외여행에 소비한 격이다. 다행히 최근 한류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폭이 감소하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년 70억~80억 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엔저와 원화 강세의 영향으로 외국 관광객이 줄고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증가해 적자가 다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수지 적자를 환율 변동 등에 따른 일시적 문제나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전통적인 경제대국은 모두 큰 폭의 서비스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계속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 교육, 사업서비스 산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미국은 최근 10년간 1조 달러 이상의 누적 서비스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금융, 사업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한 영국도 매년 700억 달러 이상의 탄탄한 서비스수지 흑자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웃 나라 중국도 이미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서비스 부분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40조 위안을 투자하여 도시화와 IT·유통·의료·교육·레저 등 서비스산업 국제 경쟁력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제조업의 성공에 더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을 높여 경상수지의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적재산권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개선해야 하는 영역도 있지만 단기간에 집중적인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도 많다. 우리의 경제 성장 모델을 중동·동남아·아프리카 등의 정부와 기업에 수출할 수 있는 고급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공항과 항만 등 운송 인프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 운송서비스 수지 흑자를 늘리는 것, 관광과 문화콘텐츠 산업을 고도화하고 의료·교육 산업 수출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육성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과거 민관 협력을 통해 경제개발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경험이 서비스산업 고도화에 잘 응용되어 또 하나의 성공 모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송기홍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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