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고발 정신 시민은 승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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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시민의 끈질긴 고발정신이 마침내 소매치기를 잡는데 개가를 올렸다. 장사 밑천 17만원을 어처구니없이 소매치기 당했던 정봉만씨(34·인천시 숭의동127)는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범인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무서운 집념으로 연9일 동안이나 추적했고 이에 분발한 경찰이 범인을 이내 검거함으로써 억울함을 풀게됐다.
서울시경은 22일 하오 5인조 소매치기단 두목 최경식(30·서울 서대문구 대현동16)을「그레이하운드」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검거하고 공범 4명을 수배했다. 두목 최는 피해자 정씨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얼굴에 흉터 3㎝가진 바로 그 사나이였다.
보통 소매치기 피해자였다면 경찰에 신고만 하고 기다렸겠지만 정씨로서는 쫓아다녀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10평짜리 판잣집에서 노모와 어린 딸을 부양하는 정씨에게는 소매치기 당한 돈이 세식구의 생계를 잇는 살림 밑천이었다. 잃어버린 17만원 가운데 2만원은 1년전부터 위암으로 앓아 누운 홀어머니 권귀순씨(60)가 고생 끝에 한푼두푼 모아 왔던 것이며 10만원은 인천 흥선 서민금고에서 빌었고 나머지 5만원은 이웃집 이모 여인에게 일수로 빌린 것.
정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돈만은 되찾아야 했다. 첫날밤 꼬박 뜬눈으로 새운 정씨는 이튿날 새벽부터 어느 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흉터의 사나이를 찾아 나섰다. 상오 7시 서울역에 내린 정씨는 천호동행 입석「버스」를 탔다 .「버스」안은 물론 정류장마다 샅샅이 살펴 흉터 사나이를 더듬었다.
처음 2∼3일 동안 하루 8∼10차례씩 왕복해도 피곤 한 줄 몰랐다. 중앙시장 안 노점에 앉아 국물 한그릇에 집에서 싸온 도시락밥을 말아먹는 사이에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하오 7시가 지나면『오늘도 틀렸구나』하고 온몸의 맥이 탁 풀려 지쳐왔다. 소매치기 당하던 날 범인들에게 얻어맞은 허리가 더욱 쑤셨다.
정씨는 지난 19일 하오 2시30분쯤 천호동 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동구청 앞 정류장에서 범인 일당 5명을 찾아냈다. 『도둑이야』 소리치며 달려들어 최의 멱살을 낚아챘으나 일당에게 늘어지듯 얻어맞았다. 범인들은 쇠막대기까지 휘두르며 정씨를 쓰러뜨리고 달아났다. 정씨는 코피를 쏟으며 1㎞쯤 뒤따랐으나 끝내 범인을 놓치는 고초를 겪었다.
정씨의 이 같은 기막힌 사연이 알려지자 경찰도 분발, 서울시경 형사과 김영한 경장과 김세창 순경 등은 전과자 사진 철에서 두목 최를 확인하고 잠복 하룻만에 최를 검거, 경찰의 불명예를 씻었다.
22일 하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에 달려온 정씨는 범인 최에게 『내 돈을 들려주고 올바르게 살라』고 타일렀다. 정씨는 자신이「택시」강도·절도·사기 등 전과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지난 59년「택시」강도질을 해 3년 동안 옥살이를 해본 쓰라린 경험이 있다는 것.
그러나 검은손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스스로의 힘으로 올바르게 살기로 다짐 한뒤 줄곧 재생의 길을 걸어왔다면서『한때 범법자였기 때문에 더욱 법인을 내 손으로 잡고 말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억울하고 분한사연이 알려지자 시민의 분노도 대단했다. 관할 성동경찰서장 김운관 총경은 범인이 잡힐 때까지 시민들로부터 모두 12번의 진정전화를 받았다고 밝히고 『이번 사건을 통해 시민의 고발 정신이 얼마나 값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고발정신에 어긋나지 않게 경찰의 방범활동도 더욱 활발하게 벌여 범죄 추방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김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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