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경제정책건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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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류파동 이후의 경제정책이란 것이 단순한 물가현실화 이상의 것이 아니어서 경제계에서는 앞으로의 경기동향과 그에 대응하는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서 무엇인가 뚜렷한 지표가 제시되기를 기대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정부는 물가현실화 이후의 경기와 정책방향에 대해 이렇다 할 종합적인 방침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답답한 입장에 몰아넣고 있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현실화된 가격수준에서 물가를 감시하고, 자원외교를 강화하며 비축금융을 강화한다는 정도의 정책만으로는 앞으로의 경기동향이 어떻게 될 것이며, 물가는 또 얼마나 오를 것인지, 그리고 국제수지는 어떻게 변화하며 환율은 과연 현 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을 것인지 추측조차 할 수 없던 것이다. 이러한 지상상실증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민간기업 자체와 조정능력이 생길 리 없고, 소비자도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판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현재의 제반여건으로 보아 경제동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이러한 대응정책을 집행함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동향을 이렇게 정책적으로 막아 소기한 정책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정책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물가현실화 이후의 종합대책을 명백히 제시하지 않고 있는 무사안일주의를 나무라면서 누차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해 왔었다. 때문에 정부가 이 시점에서 국제정세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국내경제의 대응방법에 자신 있는 방안을 스스로 제시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각계의 의견이라도 적극적으로 청취하여, 그 속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일이나마 서두르기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며, 특히 근자에는 전혀 정책적인 제언을 삼가오던 한국은행이 비교적 구체적인 종합 대책안을 제시한 것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 어려운 발언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중앙은행의 의견은 어느 나라에서나 경청돼야 마땅한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해서 정책의 일방통행이 거듭되고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음을 상기할 때, 중앙은행의 의견이 자유로이 공개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시점에서 매우 소망스러운 것이다.
한국은행은 『74년도 경제전망과 대책』에서 ①재정의 초번축과 1천 9백 50억원에 이르는 재정적자의 제거 ②실세금리수준으로의 금리인상과 지준율 인상 ③윤출금융지원비율의 인하 ④역 융자 및 외자도입억제 ⑤윤출 목표 재조정을 통해 총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증대를 기할 것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첫째 국내자원 활용을 위한 곡가·석탄가를 현실화 할 것과 저질탄 생산을 촉진할 것, 둘째 석유화학 「플랜트」를 조기완공 할 것, 그리고 세째 유류 배급제를 실시할 것 등 당면 시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은의 이 같은 건의는 이 시점에서 좀처럼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정확하게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적절한 처방을 내렸다고 할 것이다.
물론, 한은의 건의 자체도 예측을 근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불충분한 요인이 내재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대책을 그만큼 종합적이고도 균형있게 제시한 것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시책에 반영하여주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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