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언제까지 한총련 수배…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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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총학생연합회(韓總聯)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그는 이날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어제 TV에서 (수배된) 한총련 학생들이 건강검진을 받는 장면이 보도됐다"고 말을 꺼낸 뒤 "아직도 한총련이 계속 불법 단체냐"고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곧바로 이어진 법무부 업무보고에서는 "'이적단체 한총련'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도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라"고 했다. "언제까지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하는 대목에선 '답답하다'는 표현까지 썼다.

한총련에서 이적단체라는 족쇄를 풀어주고 수배자를 사면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이에 앞서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은 지난 14일 한총련 장기 수배자 가족 대표와 만나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사면에 맞춰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후보 시절부터 예고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청주에서 열린 '시민들과의 대화' 행사에서 "남북관계와 정치상황 등을 살펴볼 때 현재 한국사회의 수준이 대표성 있는 학생단체들을 굳이 이적단체로 다뤄야 문제가 풀리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총련과 충분히 대화하고 (한총련도) 앞으로 안할 것은 안하도록 풀어가는 정치력이 필요하다"며 "내가 집권하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한나라당 측은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사회의 이념 좌표를 옮기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한총련은 남한의 테두리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조해 실정법상으로도, 국민 정서상으로도 명백한 이적단체"라며 "盧대통령이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의 특별사면까지 생각하는 게 아닌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야당 일각에선 盧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도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해 즉각적인 입법 추진은 조심스럽겠지만 여론 추이를 봐가며 얼마든지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임광규 변호사는 "한총련 간부 기소 결정은 검사가 국가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인데, 대통령의 발언은 검사의 직무유기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는 "한총련을 사회 위협세력으로 보기엔 활동이 위축된 만큼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 적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정애.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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