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회전 덮친 풍랑…모함 눈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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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충무=본사 임시취재반】22일 상오 충무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군훈병 조난사고의 참변은 충렬사를 참배한 뒤 모함으로 돌아가던 길에 빚어졌다. 12주의 훈련중 10주째에 들어가 해군의 성지 충렬사에서 바다의 상승을 다짐했던 충무공의 후예들은 호국의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한채 어이없이 숨졌다. 너무나 순간적인 사고를 멀리 눈앞의 바다에 두고 부둣가의 시민들은 발을 굴렀으며 진해해군기지와 충무시 일대에는 훈병의 가족들이 몰려 생사를 알려고 안절부절이었다.

<50여명은 헤엄쳐가>-사고순간
사고직전 충무 앞바다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파고는 1∼2m로 22일 상오10시부터 폭풍주의보가 발효중이었다. 유조선 한창호에 의해 구조된 황정훈 훈병(21)에 따르면 YTL이 모함LST에 접근하기 위해 왼쪽으로 변침하는 순간 돌풍이 불면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왼쪽에서 덮쳤으며 이 순간 오른쪽으로 급「커브」를 돌면서 그대로 뒤집혔다는 것.
구출된 이수운 훈병(22)에 따르면 파도가 덮치자 훈병들은 이를 피해 갑자기 오른쪽으로 몰려 배가 기우뚱하면서 뒤집혔다고 말했다.
YTL은 전복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으며 갑판 위에 있던 훈련병들은 뛰어들어 헤엄쳐 나갔으며 일부는 파도와 싸우면서 1백m밖에 정박중인 모함을 향해 헤엄쳤으나 50여명만이 모함에 닿았다.

-항내의 예인선으로|3백50명까지 승선
배수량1백20t의 잡역선으로 원명은 「하버·터그보트」(항내 예인선). 미군이 보통 YTL(Yard Towing Large·사진)로 불러 통상 명칭이 됐다.
약4마력에 승조원은 5명이며 승선능력은 3백∼3백50명.
장거리항해는 할수 없고 연안해나 항구 안에서 인원이나 하물의 운반, 배나 부유물의 예인을 하는 다목적 잡역선이다.
배의 구조도 간단해서 앞부분에 「브리지」가 있고 뒤에 기관실이 있을 뿐 중간부분엔 갑판도 되어 있지 않다.

<수심 13m 급한조류>-사고해역
사고해역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거북선2척을 이끌고 출전, 3일만에 당포(현 산양면 삼덕리)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후 하룻밤을 쉬기 위해 들렀던 길목.
부산∼여수간 항로로 수심은 평균 l3m. 조류가 비교적 급한 곳이나 간만의 차는 크지 않다.

<기우뚱 전복…5분 못돼 침몰>-사고원인
갑자기 덮친 파도와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과다승선이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YTL은 외항에서 내항으로 들어가면서 모함LST에 접근하기 위해 약1백m밖에서 왼쪽으로 변침했다. 이때 갑자기 왼쪽에서 높이3m의 파도가 덮쳐들자 이를 피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급선회했으며 이와 함께 3백16명의 무게가 오른쪽으로 쏠려 복원력을 잃은 배가 그대로 전복한 것.
구출된 훈병들에 따르면 3백16명의 사병들이 갑판 위에 모두 탈수 없어 YTL의 「해치」아래 선실에 들어섰으며 일부는 갑판 위에도 정렬해있어 구출되었다는 것.
훈병들은 작은 YTL에 너무 많은 훈병을 태운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고 했다.
또 관상대 부산지대에 따르면 이날 사고해역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파고가 3∼4m가 일 것으로 예보했는데도 주의가 부족했던 것도 사고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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