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쇼는 계속 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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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사흘간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뮤지션 의무 고용인원 보장안을 놓고 제작자협회와 뮤지션 노조간의 최종 협상이 결렬되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총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은 1975년 이후 28년만의 일이다.

뮤지션 노조측은 '카바레'를 제외한 18개 뮤지컬과 개막 리허설 중인 3개 작품이 파업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카바레'는 악기 연주를 코러스 배우들이 겸하는 방식으로 별도 계약을 해 유일하게 파업에서 빠졌다.

한편 제작자들이 파업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버추얼 오케스트라(악기를 따로따로 녹음해 디지털로 연주하는 방식)' 시스템은 파업 이후에도 도입되지 못했다.

파업 개시 3시간 전 배우노조와 기술노조가 뮤지션 노조의 파업에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공공연히 '버추얼 오케스트라'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협상의 주도권은 제작자에서 노조 연합군 쪽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양자간의 대립이 결론이 나지 않자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시장 공관에서 중재를 자처하고 나섰다. 때마침 시외곽에서 경찰관 두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비상사태가 발생해 블룸버그 시장은 밤새도록 공관과 사건 현장을 숨가쁘게 오갔다. 노사 양측 대표단은 이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서둘러 절충안에 전격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9.11 테러 직후 줄리아니 당시 뉴욕 시장은 "브로드웨이 쇼를 보고 쇼핑하면서 뉴욕이 제 기능을 찾는 것이 테러를 극복하는 길이며 그것이 진정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이틀후 공연을 재개했다.

이번 파업이 조기에 매듭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이들의 기본 전제가 밥그릇 싸움을 넘어선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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