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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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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 2, 3…,「알지브라」(대수학)·「알콜」·「알케미」(연금술)·악기의 한 가지인「기타」·「탬버린」·「팡파르」….
이들은 모두「아랍」어 에서 유래한 말들이다. 숫자를 헤아리는 말이「로마」자(I,Ⅱ…)아닌「아라비아」숫자인 것도 특기할 만하다. 수학자들은「아라비아」인들이「0」(영)이라는 숫자와 기호를 발명한 것은 무엇보다 큰「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그것이 없이는 고전수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문화사를 펼쳐보면 8세기 초엽에「이슬람」세력은 잠시나마 지축을 흔들었다. 그들은 동서남북으로 진군, 한때는「피레네」산맥을 넘은 적도 있었다. 「이베리아」반도 남쪽 끝에 있는 유명한 항구「지브롤터」는 바로「아라비아」의 장군『「타리크」의 바위(암)』라는 뜻이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오늘의「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역사를 거슬러 가면 이「이슬람」문명과 만나게 된다. 물론 역사는 수없이 변전했지만「아라비아」의 꿈은 아직도 오늘의「아라비아」인 마음속에 살아있다.「사우디아라비아」왕국의 면적은 한반도의 10배를 조금 넘는다. 그것은「아라비아」반도의 5분의4 쯤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7백40만명. 종교는「이슬람」교이지만,「와하브」파를 국교로 섬긴다.
「와하브」파는「와하브」(1703∼1791년)를 시조로 삼고 이 원시「이슬람」교의 부활을 신조로 한다. 따라서 신학적 기행이나「필그림」을 부정하고「코란」(「이슬람」의 성서)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지금의 국왕은 석유파동과 함께 더욱 명성이 높아진「파이잘」앙. 그는 1964년 11월2일 선왕「사우드」의 퇴위를 이어받았다. 선왕과는 눈에 띄게 선정을 베풀어 덕망이 높다. 몇 년전 만 해도 불과 1백개 밖에 없던 각급 수교가 지금은 1천4백 여 개로 늘어났다. 67년까지도 종교대학 뿐이던 이 나라에 현재는 6개의 대학이 생겼다.
국가건설의「해머」소리도 요란하다. 도로포장건설도 4천「마일」에 이르며, 폐 선된 철도를 다시 개통시키고 해수의 탈 감용 원자호도 건설을 서두르는 등 부산하다. 그러나 인구의 3분의 l은 아직도 사막에서 가축을 몰고 다니며 10명중 7명은 문맹이다. 하지만「파이잘」왕은 몸소 금욕재계하며『도덕적인 사회』의 건설에 힘쓰고 있다.
이 나라를 오늘의 세계무대로 끌어올린 것은 1933년에 발견된 석유의 천혜를 입은 것이다. 그 확인매장량은 무려 7백억「배럴」로 세계총계의 15%를 차지한다.
우리 나라와의 친교는 의외로 길다. 1024년 고려 영종 때 벌써 대식 국(아라비아)상인들이 예성강포구로 드나들었다. 고려악지의『쌍화점』고사도 있다. 「아라비아」인과 고려여인의 연사를 읊은 노래다. 요즘 그 나라의 한 장관이 내한하면서「아랍」인「상코」를 시조로 한다는 덕수장씨의 후손이 나타나 미소를 자아내고 있다.
역사의 회전은 때때로 이런 감회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초상화는 덕수장씨 후예 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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