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랑 유치진형을 곡함|서항석<극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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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월10일은 우리들에게 더없이 불길한 날이었다. 연극계의 선봉이요, 희곡 단의 거장인 동랑 유치진 형이 드디어 불귀의 길을 떠난 날이다. 비보가 거리에 전해지자 문화예술계는 짙은 애도의 염에 잠겨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동랑은 우리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나 이제 40년 동 주자를 잃은 이 마당에서 더할 나위 없는 슬픔과 쓸쓸함에 짓눌려 말이 말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으로 변할 것만 같다. 울먹이면서 회상하는 우리들의 과거는 1930년대로 돌아간다.
1931년 7윌8일 신극수립을 목표로 12동인이 결집한「극예술연구회」의 창립은 동랑과 나를 이 길의 동주자로 얽어놓은 것이다. 12동인중 더러는 이미 타계하고 더러는 위 북으로 끌려가고 이곳 생존자중에서 고집스럽게 연극을 지켜 그 형극의 길을 마다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은 오직 동랑과 나다.
사람 사는 길이 평탄치 못하여 우리사이에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전우」로서의 연대감과 우정은 늙어갈수록 짙어졌던 우리가 아닌가? 이제 나의 이 쓸쓸하고 허전한 심경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동랑은 갔지만 동랑이 남긴 희곡들이 있고, 좋은 연출의 기록이 있고, 「드라마·센터」와 연극학교가 있고 동랑의 뜻과 일을 이어갈 훌륭한 자녀가 있다. 이것으로 동랑은 70평생을 헛되이 산것이 아닐 뿐 아니라 내일을 위하여 넓은 터전을 마련하고 높은 탑을 쌓아올린 것이니 동랑으로 서는 여한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아끼는 마음이 덜할 수는 없다. 오흐!
지난 2월1일 우리들 연극인 몇몇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같이하는 기회에 동랑은 요즘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예술진흥정책을 논하면서「집중적」으로 해야한다는 말에 열을 올린 것이 지병인 고혈압의 충격으로 쓰러졌었는데 이내 일어나지 못하고 신금. 10일에 드디어 타계한 것이다.
「집중적」이란 말의 뜻은 문화예술진흥에 있어서 각 부문에 골고루 지원하여 전시효과를 노리기만 일삼지 말고 필요한 부문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지금 연극부문이야말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문이란 뜻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집중적」이란 말을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부르짖다가 쓰러진 동랑이다. 살기도 연극으로 살고, 죽기도 연극으로 죽은 동랑이다. 그리고「집중적」이란 말은 동랑의 유 촉이다. 이 유 촉이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동랑의 영을 위로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당국자의 배려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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