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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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바둑처럼 세대 교체가 치열한 세계도 드물다. 정상에 오르기는 힘들어도 빼앗기기는 쉽다.
지난 1일 제8기 왕위의 자리에 새로 하찬석 5단이 올랐다. 그가 꺾은 김인 7단은 왕위의 자리에 새로 하찬석 5단이 올랐다.
그가 꺾은 김인 7단은 왕위의 자리를 7기에 걸쳐 차지했었다.
바둑계의 틀을 잡아 놓은 것은 조남철 8단, 그의 왕좌는 언제까지나 뒤집힐 것 같지 않았었다.
그게 허망하게도, 당시 20대의 김인에 의해 무너진게 어제만 같다. 이제 그 김인 천하도 26세의 하 5단에 의해 허물어졌다.
하 5단은 이미 지난 연말에는 국수위까지 차지한 바 있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의 천하가 계속될 거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몇 해나 갈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바둑처럼 매정한 승부의 세계도 드물기 때문이다.
바둑은 예부터 수양에 좋다고들 했다. 요가 그 아들 단주를 교훈하기 위해 처음으로 바둑을 꾸며 냈다는 고사 때문에서만은 아니다.
신당서의 고구려 전에 보면 『호위기투호지희』라는 말이 나온다. 이걸 보면 우리 나라에서도 바둑은 삼국시대부터 성행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꼭 수양의 뜻에서만은 아니었다. 공·사간의 친선을 위해, 또는 국사 정탐을 위해 바둑이 이용되는 일이 많았다.
고려 때 나온 「예성강곡」이란 가사가 있다. 당나라 상인과 내기 바둑을 두다 그만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긴 남편의 슬픔을 노래한 가곡이다. 이것을 보면 노름 바둑도 흔했었나 보다.
그러나 바둑은 예부터 도와 가까운 것으로 되어 있다. 고구려 때의 국수는 도림이라는 명승이었다.
이씨왕조 안평대군의 사랑방에는 언제나 기객이 들끓었고, 세조는 또 『오행위기법』이란 책까지 손수 엮은 적이 있다.
영·정조대에 살던 김종귀는 90이 넘도록 국수의 자리를 지켰으며, 그 뒤를 이은 최북도 80이 다 될 때까지 국수의 명예를 지켰다.
이제는 다르다. 처음으로 조남철 국수를 꺾었을 때 김인의 나이는 23세였다. 2년 전에 19세 밖에 안 되는 서봉수는 명인의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다. 또 지난 연말에 김인으로부터 최고위 타이틀을 빼앗은 조훈현은 21세의 약관이었다.
바둑은 한판 두는데 8시간 이상이 걸린다. 옛날에는 시간에 제한이 없었다. 며칠씩 걸리는 대국도 흔했다. 그런 대국을 이기려면 여간 강력한 정신력이 소요되는게 아니다. 수양이 문제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승부보다도 명국을 남기려고 했던 것도 이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뭣 보다도 체력이 문제되고 있다. 경험보다도 감각이 더 문제되고 있다. 바둑의 세계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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