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찬반논의|한국판으로 둔갑한 일본검술 영화 좌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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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과의 공식적인 영화교류는 계속 미결인 채 최근 이른바 자도이찌 시리즈라는 일본의 검술영화가 한국판으로 둔갑, 제작 상영되고 있어 앞으로의 한·일 영화교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크게 주목되고 있다.
자도이찌라면 우리 나라 영화 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본 배우 가쓰·신따로를 정상에 올려놓았고 60년대 이후 일본시장은 물론 한국을 제외한 동남아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한 일본의 전형적인 검술영화의 주인공.
72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 영화제때『좌두시의 화제』라는 시리즈 중의 1편이 일반 공개된 적이 있고 그에 앞서 62년과 66년 각각 서울에서 열렸던 아시아 영화제때도 출품, 관계자에게만 공개된 적이 있었으며 이제까지 제작된 자도이찌 시리즈만도 모두 25편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25편의 자도이찌 시리즈를 한국판으로 제작, 국내에서 상영하는 한편 동남아를 비롯해 해외시장에 수출할 계획을 세운 것은 S 필름이다. S 필름이 이같은 계획을 세운 것은 일본상품이 동남아에서 배격되기 시작하여 일본영화까지도 기피 당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착안, 자도이찌 시리즈의 한국판을 제작, 기왕의 시장성을 이어 받는데 있었던 것 같다.
S 필름은 자도이찌 시리즈의 원작자 시모자와·강(과의 협의아래 일본제작권 보호동맹으로부터 우선 시리즈 1편의 영화화권을 50만 엥에 입수, 73년 10월 30일 문공부에 제작 신고를 마치고 제작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완성, 수정을 기해 개봉된 것이 『죽장검』. 일본 대영 영화서 30년간 감독 생활을 해온 재일 교포 신영일씨(일명·평산영일)가 메거폰을 잡고 김희라·명희·이순재 윤영지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가 공개되자 이 영화를 일본 영화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 한국 영화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가 논쟁의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이 논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영화에 대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맺는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이 정상적으로 영화교류를 하고 있다면 애당초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그러한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이 영화를 순수한 한국 영화로 간주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것 같다. 물론 한국의 영화사가 제작을 했고 한국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작중의 무대도 이조중기로 설정하고 있지만 연출기법이나 검법 등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본영화에 너무나 흡사하며 또한 한국영화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하여 만약 이 영화를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일본 영화』로 간주한다면 한·일간의 정상적인 영화 교류에 앞서 이러한 방법의 일본영화 소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참고로 72년 문공부가 계획한 한·일 영화교류를 위한 4단계 조치를 보면 ①일본과 제3국의 합작 영화 소개 ②국산영화에 일본 배우 출연 ③한일합작 영화 제작 ④일본 영화 수입으로 되어 있어 이런 식의 일본 영화 소개는 고려되지 않았다.
『해묵은 대일 감정 때문에 한일간의 영화 교류가 언제까지고 지연 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거니와 이런 방법으로 일본색 영화를 소개할 바에는 차라리 단계적으로 한일영화 교류를 실현시키는 것이 더욱 떳떳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어느 영화인의 말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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