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은호의 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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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은호 침몰사고의 후일담은 너무도 충격걱인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도시 외항선이 적재량을 훨씬 넘은 5백t이라는 짐을 실었다는 것부터가 사고를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다.
출항 4시간 후부터는 파고가 9m나 될만큼 바다는 거칠었다. 기상도도 보지 않고 떠나지 않았나 하는 의심조차 든다.
그런지 얼마 후에 갑판장은 잠을 잤다. 그만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왜 배가 갑자기 침몰했을까? 여기에도 적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
혹은 황천 항해법을 잘못 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털어버릴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선장의 자격부터가 문제가 될만하다.
생존자 말에 의하면 선원들은 대마도로 대피하자고 졸라댔다고 한다. 이미 선장이 배를 돌리려 했지만 허사였었다는 말과 선원들의 호소를 선장이 묵살했다는 말이 엇갈려 있다.
어느 쪽이 옳은 말인지는 모른다. 다만 선장에게 선부들이 이래라 저래라 졸라댔다는 것은 그만큼 배 안이 혼란의 극을 이루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죽음을 앞둔 극한상황에서 사람이 냉정을 지킬 수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항해란 철통같은「팀워크」를 요구한다. 이게 무너질 때 배는 뭍에 오르기 마련이다. 아우성치는 선부들 사이에 끼여 선장이 의연하고도 침착하게 정확한 항해를 지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장에게 전혀 책임이 없을 수도 없다. 「팀워크」의 전제가 되는 것은 선장의 권위다. 평소에 선장을 신뢰하고, 그의 명령을 기대적인 것으로 여겨 왔다면 어지간한 파도는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통신장이 SOS도 칠 줄 모르는 부자격자였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가 배에 탈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배가 침몰하기까지는 1시간여나 걸렸다. 만약에 그 동안에 SOS라도 쳤다면 거의 모든 선원들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분노를 누를 길이 없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큰 충격을 주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선장의 하선명령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한 선원은 재빨리「보트」에 혼자 타고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보트」는 20인승이었다. 그밖에는 2개의 소형 고무「보트」가 있을뿐이었다. 여기 나머지 19명이 갈라타야 했다.
물론 정원이 넘는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이런 고무「보트」가 얼마나 이겨내기 어려운지는 그 선원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혼자만 구명정을 타고 달아났다.
추악한 생존욕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원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그 선원과 같지 않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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